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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by 감사렌즈


합격자 발표일은 유난히 시간이 더디다.
집안일을 해도 손끝이 느리고, 아이와 웃는 순간에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혹시 연락이 올까 봐, 혹시 놓칠까 봐.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 숨소리마저 조용해지는 순간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둘째 아이의 줄넘기 방과후 공개수업 날.
체육관 바닥을 박차며 뛰는 작은 발을 바라보면서도, 시선은 자꾸 주머니를 향한다.
전화 면접 예정이라는 말에 혹시라도 모르는 번호가 뜰까 긴장이 계속됐다.
하지만 아무런 벨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오후 늦게 도착한 문자 한 통.
“아쉽지만 서류 전형에 합격하지 못하셨습니다. 더 좋은 기회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공손한 문장이었지만, 심장이 묘하게 저려왔다.
기대를 하지 말자고 했으면서도, 기대하고 있었구나.

괜히 짜증이 났다.
전화하지 않을 거라면 아예 말을 꺼내지 말지.
괜히 기다리느라 아이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 시간마저 허비한 듯한 기분.

입사 지원서를 쓸 때마다, ‘이번엔 가능하겠지’라는 마음이 스며든다.
불합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성적으로는 안다.
하지만 떨어지는 순간, 한없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작은 한 줄의 문장이 자존감을 휘젓는다.

도서관에 갔다.
자기소개서와 면접 관련 책을 빌렸다.
간단하게 쓴 표현 하나가 발목을 잡은 건 아닐까,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고쳐야 할 부분은 많고, 다시 시작하는 길은 길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고 싶진 않다.

후회도 조금씩 따라온다.
학생일 때 조금 더 공부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는 몰랐던 노력의 무게가 지금은 절절히 느껴진다.

퇴사 후,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멈추지 않았다.
매번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 매번 기다리는 합격 발표.
끝난 줄 알았던 시간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오늘도,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도, 또 다른 희망을 품고 그 화면을 들여다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이 기다림 끝 어딘가에, 분명 나를 기다리는 자리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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