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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불빛 하나에 위로받던 그 밤

by 감사렌즈

어린 시절,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
뭘 해도 잘 안 됐고, 자주 혼났고, 스스로도 ‘나는 안 되는 애’라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마음 졸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대학에 가게 되었다.
늦은 밤, 하루를 끝내고 들른 교정의 잔디밭.
불이 꺼져가는 강의실, 조명이 켜진 교정, 그 풍경이 이상하리만큼 마음에 들어왔다.
그날 따라 조용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돌 위에 앉아 맥주 한 캔을 열었다.
별건 없었지만,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나 공부하고 있구나. 부족하지만 하고는 있구나.’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낀 날이었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했고, 과제는 늘 벅찼고, 체력도 바닥이었지만
그냥 배우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기뻤다.
가슴 안쪽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전까진 늘 누군가를 먼저 챙겨야 했고,
살아가는 데 ‘책임’이란 단어가 먼저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내 안의 ‘기쁨’이 먼저였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결과를 증명하려는 것도 아닌,
내가 나에게 주는 기쁨.

어쩌면 그게 진짜 배움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마셨던 맥주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달지도, 쓰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하고 묵직하게, 내 안 어딘가로 스며들었다.

지금도 흔들릴 때면, 그 밤을 떠올린다.
그 불빛 아래에서, 나는 나를 처음 믿어보았으니까.

그리고 알게 되었다.
위로는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별거 아니라 여긴 날들,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갔다 생각한 순간들이
사실은 나를 일으켜 세운 날들이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은 조용히 얼굴을 바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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