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남자를 만나지 않기 위해 조심해왔습니다.
그런데 행복학교에서 본 법륜스님의 영상은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가정폭력 트라우마를 가진 한 여성이 말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남자를 만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서요. 짧게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해요. 아버지가 폭력적이었기에, 아빠 같은 사람을 또 만날까 봐 무서워요.”
스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런 사람을 안 만나야지 하면, 오히려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요.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지’라고 마음을 내세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피해야 산다고 믿었는데, 정작 살아가는 힘은 ‘피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나와 남동생을 친정집에 맡기고 떠나셨습니다.
그 집엔 두 명의 삼촌이 있었는데, 한 명은 정신적으로 불안했고, 다른 한 명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친정아버지, 그러니까 외할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밥상을 뒤엎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집은 늘 무섭고, 어둡고, 도망치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기라도 하면, 삼촌에게 끌려가 맞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초등학교 입학 전, 엄마가 날 데리러 오셨고, 그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밤에 포장마차에서 일하셨습니다.
늦은 밤 출근하시고, 해가 밝을 무렵 돌아오셨습니다.
그 시간, 나는 혼자서 텅 빈 방을 지켰습니다. 방은 지나치게 컸고, 밤은 유독 깊었습니다.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 상상의 친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밤들의 감정은 한마디로 정리됩니다. 외로움. 그리고 공포.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릅니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고, 나만의 가족을 갖고 싶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열 해를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
연애 시절 그는 친절했고 다정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말투가 바뀌었습니다.
가시처럼 날아든 말들은 나를 다시 어린 시절의 두려움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혼을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를 붙잡았습니다. 아이들과의 인연이 나와 그 사람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마음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고,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거친 말투는, 그가 받은 고통이 흘러나온 또 다른 울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도망치듯 결혼했지만, 결국 나는 또 다른 상처의 언덕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언덕에서 돌아서는 대신,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이제 조금 부드러워졌습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바뀌지 않는 건 마음을 닫은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스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는 마음보다, 만나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우리가 함께 웃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