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땅이 꺼지겠다"
동기언니의 말에 차가운 물이 머리에 쏟아졌다. 그렇게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줄 몰랐다. 전업맘으로 10년을 살다가, 지난 7월에 회사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업무적응이 쉽지 않다. 모니터 속 글자를 흐릿해질 즈음,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더님이 손짓하며 부르셨다.
"멘탈이 흔들리건 알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현기증이 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한 달간 교육팀에서 지내다가 갑작스레 새로운 팀으로 옮겨졌다. 회사에서도 드문 경우라며, 사람들은 소곤거렸다. "말도 안 된다"는 안쓰러운 시선이 따라왔다.
드디어 11시 30분 점심시간이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다. 밥은 없고 반찬만 가득했다. 옆자리 언니가 밥을 반을 덜어주며 말했다.
" 얼른 먹어. 컵라면도 끓여줄게."
아침에 긴장한 나머지 밥을 챙기는 걸 잊었던 것이다. 언니들은 등을 토닥여주면서 이럴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니들의 말들에 움축이고 있던 마음이 조금씩 펴졌다. 그래 다시 해 보기로 결심했다. 또한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매달 나가는 돈이 정해져 있고 두 아이의 학원비도 필요했다.
그렇지만 적응은'산 넘어 산'이었다. 산은 결코 혼자서 오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산을 오를 때, 동료언니들이 땀을 닦아 주었고 . 주저앉은 팔을 붇잡아 일으켜주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한자 사람인 떠올랐다. 서 있는 사람이 쓰러질 때, 뒤에 있는 사람이 받쳐주는 모양이다. 사람은 혼자 설 수 없고, 서로 받쳐줄 때 비로소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니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말했다.
" 엄마, 집에 오는 길이였어요. 시장 골목길에서 검은색 오토바이가 넘어졌죠. 짜장과 짬뽕 바닥에 쏟아졌어요. 꽃집 아주머님은 짜장과 짬뽕 그릇에 담았어요 .사람들이 달려와서 아저씨를 일으켜주고 도와주었어요."
옆에서 중학교 1학년 아들이 거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대한민국 아직 살만하다."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하루 종일 쌓인 무거움이 조금씩 덜어졌다.
직장에서든 거리에서든, 우리는 서로를 받쳐주며 살아간다.
쓰러질 때 손을 잡아주는 사람,
밥을 나눠주는 사람.
길 위에서 함께 일으켜주는 사람.
그 손길이 있기에 산을 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