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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 아빠의 육아휴직 프로젝트(3)

휴직은 왜 하는거고 뭐할꺼야?

한 4년 전인가?

회사에서 설비 Set-up 업무를 마치고 밤 9시경에 근처 맥도널드에서 같은 업무를 했던 후배랑 햄버거를 먹었다. 9시까지 남아서 같이 해준 후배가 고마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정말 ‘배가 고파서’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다음 날 부서장 하고 면담을 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싫었나? 설마 맥도널드가 너무 싫었는데 내가 데리고 가서 그런 말을 한 건가? 아니면 소고기라도 사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맥도널드 ‘소고기 패티’ 였기 때문에 내가 미웠던 건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부서장과 내가 면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이유는 그게 아니었고 해당 업무가 너무 힘들고 스스로의 커리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사실 돈을 벌거면 교대근무 쪽이 더 많이 벌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낸 것이라고 하는데 잘 포장해서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충격이다. 난 이 쓰레기 같고 커리어가 쌓이지 않는 업무를 무려 5년이나 하고 있었단 말이다!


이후 내 업무가 내 위의 과장들의 폭동(?)으로 인해서 다들 평택으로 사라진 다음...

해 볼 수 있는 모든 업무를 다 해본 것 같다. 부품, 전산, 설비 주무(보통 설비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까지. 그렇게 하고 나서 보니까 내가 했었던 일보다 더 바쁘고 힘든 부분도 많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간은 후배들과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룹장이나 직장 혹은 타 부서 장들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분들이 말하는 것이 곧 법인 세상에서 내가 아무리 떠들고 해 봤자 변하는 것이 없었고 본인들의 의지와 어긋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많은 제약이 가해졌다. 거기다가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업무 파악을 하려면 항상 6시 정도에 출근을 하는 생활이 이어졌는데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서울에 살고 있었으니 적어도 4시 30분 전에는 일어나서 씻고 출발해야 도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사를 오는 게 어떠냐고? 지금 부동산 가격을 보자. 과연 서울에 사는 게 옳았는지 경기도에 사는 게 옳았는지. 그리고 아이 병원 때문에라도 서울에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 개인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겠다.


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출근을 하면서 항상 피곤함을 느끼긴 했는데 어느 순간 경부고속도로에서 시속 110km로 달리면서 곡선 차로를 직선으로 주행하고 있던 나를 보게 되었다. 잠깐 차를 갓길에 주차하고 내려서 하늘을 보았는데 겨울이다 보니 해도 안 뜨고 어둡더라. 매일 점심시간 말고는 해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삶이 과연 정상적인 삶인가? 이런 삶을 겪어야 더 발전할 수 있는 곳이었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을 했다. 그렇게 해당 업무에 대해서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쯤 교육만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교육부서로 파견을 갈 기회가 생겼다. 이것도 사실 내가 갈 것이 아니었는데(대상자이긴 했지만) 이제는 뭔가 변화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박박 우겼다. 그리고 그곳으로 터벅터벅 갔고 회사 생활 처음으로 다른 부서에서 업무를 하게 된(짧게 한 달짜리 업무 같은 것은 제외하고) 첫 해였다.


칼퇴 가능, 주말 일 안 함!

이거 두 개만 가지고도 정말 엄청난 혜택이었다. 뭔가 달리는 말을 계속 타고 가다가 걸어 다니는 느낌이라고 할까? 거기다가 인생 살면서 누군가를 가르쳐 본다는 게 이렇게 흥미롭고 즐겁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물론 지금에 와서는 똑같은 것을 매일 가르쳐야 하니 지겨워서 이제는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사이에 마음속에서만 있었던 경영전문대학원도 이렇게 시간을 빌어 졸업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도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이 빨라지니 정말 친해졌다. 특히 첫째 병원 다니는 문제로 항상 첫째에게만 신경을 쓰다 보니 둘째에게는 다소 소홀했었던 것이 사실이어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둘째가 나를 봐도 아는 척도 잘 안 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항상 집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뛰어와서 안긴다. 왜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같이 여행을 가서 돌아가는 날이 되면 항상 울면서 하는 말이

“아빠가 또 회사를 가야 하는 것이 너무 싫다”

라고 말해 주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 어딘가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았다.


인생은 긴데 나도 한 번은 터닝포인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교도 재수를 하지 않았고 군대도 군 휴학 이후 더 이상의 휴학을 하지 않았으며 학교 졸업하기 전에 취업이 결정되어 취업도 스트레이트로 했다. 그리고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년을 거의 한 번도 쉬지 않고 쭉 달려온 느낌인데 지금 와서 생각을 해 보면 과연 나는 앞으로 10년이 지났을 때 이 일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다른 것을 향해 달려갈지에 대해서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실제로 대부분의 업무를 거쳐서 와 보니 주변에서 이제 심심치 않게 명예퇴직을 하고 있었고 원래 돌아가야 할 부서는 지난 3년간 바뀐 것이 전혀 없이(아니, 심지어 더 악화만 된 상황이지...) 계속 힘들어하는 사람만 늘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10년 살고 명예퇴직하면 난 뭐하지? 지금도 조금씩 여기저기 몸은 망가져가는데 내가 이런 상황을 적응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뭔가 나 스스로 바뀌어야 하는 거 아냐?


날짜를 박아놓지 않으면 못할 거 같았다!

2022년 3월 15일 내가 휴직할 날짜이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육아휴직을 하면 받을 수 있는 돈과 그 해 1/4만 받게 될 PS(2023), 그리고 연차 비용

그동안 계속하고 있는 부업들인 설문지 조사와

중고책 판매 , 서평 작성

이런 육아휴직 기간을 위해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용기와 노력

이때 해볼 수 있는 창업과 제주도 한 달 살기 등을 하나씩 준비해 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고 있는 매주 10만 원씩의 배당주 투자는 나를 점점 튼튼하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년 동안 준비하고 나머지 1년을 어떻게든 돈 걱정 없이 즐겁게 휴직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내 목표이다. 이렇게 글로 남겨보면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달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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