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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11) 어두운 그림자

코로나가 결국 왔구나...


회사에서 살짝 농땡이를 피우고 있을 무렵,

02로 시작하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최근 이 번호로 전화가 오면 90%의 확률로 지방선거 전화였는데 가운데 번호가 동네 번호라서 이번에는 부동산인가 싶었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살짝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팔라는 전화가 자주 오곤 했는데 그래서 빠르게 끊을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아버님이시지요?"

"네, 맞습니다."

"아, **이가 지금 보건실에 있는데 열이 많이 나서요. 지금 어머님이 안 받으셔서 아버님께 연락드렸어요."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올게 왔구나, 드디어 올게 왔어... 무려 2년 이상을 요리조리 잘 피했던 우리 가족이었는데 드디어 올게 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교를 한다는 통보와 함께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 집으로 간데, 당신 어디야?"

"아, 지금 장보고 있었는데, 바로 돌아가야겠다."

"가서 검사하고 연락 좀 줘."


원래도 농땡이를 부리기로 유명한 나인데 이제는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물론 주변에다가는 '어차피 모두 걸려야 하는 거 빨리 걸리고 그만뒀으면 좋겠다'라고 설명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막상 그 그림자가 내 근처로 왔을 때는 그 어두움 때문에 조금 무섭기도 했다. 아프다며!!


애매한 2줄이었다. 처음에는


"사진 봐봐, 좀 애매한데 2줄인 거 같아."

"아......"




뭐, 확정적이다. 이미 걸렸던 친구들한테 문의 시 이건 뭐 100% 확률이라고 한다. 그래도 못 미더워서 근처 병원에 신속항원 검사를 보냈는데 역시나 100%를 어김없이 피하지 못하고 양성이란다. 심지어 보통 10분을 기다려야 나온다는데 3분 만에 확진 판정이 되었다나...(깔끔해서 좋은 건가?)


요 상황이 되는 시점에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의외로 둘째는 멀쩡하게 놀았다.

밥도 겁나 많이 먹고, 움직이기도 잘 움직였으며 형아를 찾아 삼만리처럼 돌아다녔다. 웃긴 건, 환자는 둘째인데 우리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둘째는 마스크를 벗고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답답하고 열나는 거 같아서 못 쓰겠데 나... 뭐, 환자가 그렇다는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소... 그리해야지...


"**야, 아파?"

"응? 그건 아닌데 힘이 없다."


다시금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밥을 엄청나게 먹더니 조금 있다가 눕기 시작했고(우리 애들은 잠자기 전까지 잘 눕지를 않는다) 그러고 열이 다시 살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플러스, 먹은걸 다 토해버렸다. 아, 이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괜찮아?"

"응, 나 이제 좀 잘래."




체력이 쭉 빠진 것일까? 스스로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한편으로는 벌써 2년 전부터 코로나 확진이 되면 이렇게 호들갑들을 떨었는데 해결이 안 된 것을 보면 바이러스가 진짜 무섭긴 한가보다 생각했다. 내 마음은 솔직히 반반 치킨이다. 걸려도 되고 안 걸려도 되고. 그런 마음이 드니까 굳이 우리 둘째와 따로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럴 생각이 없다. 이렇게 귀여운 우리 아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코로나 균이 원망스럽지만 그 덕에 가족하고 있는 시간은 늘어나서 조금 마음이 편하긴 하다. 물론, 내가 걸려서 아프면 환장하겠지만.


PS: 사실 내가 자영업도 해보고 느끼는 거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문제가 있을 때 바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래도 엄청난 장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다고 충성충성 이런 건 못하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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