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ume des jours
미셀 공드리와 처음 닿은 건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첫사랑을 경험 중인 어린 나는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처음으로 그에게 배웠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세상은 부정하게 되었고 사랑에 대한 가치관만 베끼려는 겉멋 든 열일곱 고등학생이었다. 10년이 지나 스물일곱의 나는 그의 사랑과 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무드 인디고'를 보았다.
나는 그의 세상이 부담스럽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과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인물들, 도대체 왜 굳이 저 물건이 저런 용도로 쓰이는지, 도대체 저 인물이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머리로 이해하라면 절대 할 수 없을 그만의 세상에 나는 멀미가 날 지경이다. 마음 굳게 먹고 영화를 보자니 엉뚱한 상상력으로 넘쳐버린 화면들이 내게는 어린아이 낙서처럼 다가오게 돼버렸다. 그래, 그의 세계는 어린아이의 세상과 같아 보이는 모든 것들이 지금 내가 보는 것과 다른 모습이고 '콜랭'과 '클로에'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서로의 수줍은 고백으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번졌고, '시크'와 '알리즈' 또한 서로의 공감대인 당대 최고의 철학가 장 솔 파르트르로 인해 사랑이 시작된다. 네 사람은 모두가 다른 사람이고 다른 형태의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클로에'는 폐에 수련이 자라나 '콜랭'은 전재산을 쏟아붓고 '시크'는 파르트르에게 더욱더 빠지게 되며 '알리즈'는 점점 지쳐만 간다. 컬러풀한 사랑의 환상이 가득했던 그들이 서로서로의 시련으로 지쳐만 갈 때 미셀 공드리의 세상은 어두워져만 간다. 사람의 마음을 화면의 색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해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고 표현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관계를 눈치챌 수 있게 된다. 미셀 공드리는 표현에 대해 굉장히 직관적인 듯하다. 화면의 색도 그렇지만 폐에 수련이 자라는 병이라던지 전재산을 탕진해가는 '콜랭'의 재산을 돈이 아닌 집의 크기를 줄게 하고 '클로에'를 간병하며 고생하는 '니콜라'의 나이가 정말로 많아진다던지 결혼을 하고 너무 좋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는 말의 표현을 물속을 둥둥 떠다니는 두 사람으로 표현하는 등 감정에 대한 솔직함도 보여주지만 파르트르를 통해 사이비 종교나 마약, 술에 빠져 병들어가는 사람을 '시크'를 통해 말해주고 종교를 이익의 수단으로써 활용하는 성직자들을 표현한 장례식 장면과 속이 비치는 자동차를 보면 그는 껍질을 다 걷어낸 오롯이 맨 몸으로 서있는 사람처럼 가식적인 느낌이 전혀 없다.
그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건 아직도 어렵고 불편한 건 변함이 없다. 그래도 미셀 공드리처럼 어린아이의 생각을 갖고 싶은 철부지 일곱 살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