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판된 이유를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사랑의 상실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여러 가지 형태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꿉친구인 첫사랑의 죽음, 그를 잊지 못한 그녀의 죽음, 혼란스러운 자신 때문에 이혼을 하는 여자,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해버린 여자의 이별, 병으로 죽음에 이른 아버지와의 이별.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바라보았던 다양한 모습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성장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먹먹함이 전해진다.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삶과 함께 살아가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성찰로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너무 많은 인물들이 죽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마무리짓는 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에게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와타나베'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나오코'와의 시간들을 통해 느낀 감정이 이야기가 흐를수록 그의 마음이 더 이상이 사랑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알게 된다면 그녀가 겪었던 사랑의 상실을 통한 상처와 슬픔을 반복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친구를 통해 가슴 아픈 이별을 겪게 된 그녀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마저 그녀를 떠나면 안 된다는 연민의 마음으로 그녀를 계속 이어 나간 건 아닌가 싶다. 당연하지만 열병처럼 지독한 사랑의 상처들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행복할 수는 없다. '와타나베'를 마음으로써 다가가는 '미도리'조차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은 그에게 짝사랑의 고단함을 버텨내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이 초라해져 보일 정도로 너무 안쓰러웠다.
세상이 조금씩 가벼운 관계에 열린 마음을 가져가는 시기에 이 글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랑에는 가볍기만 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보인다.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밤의 거리에서 다양한 여자들과 가벼운 만남들을 가졌지만 깊은 마음을 품은 '나오코'에게 돌아갔고 깊어져 가는 미도리를 원했다.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다양한 만남과 관계의 모습 속에서 가벼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사랑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거니와 가벼운 만남을 겪어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다만 '하나의 마음에 여러 사람을 품는 일이 문제가 될까?'라는 질문을 품어보았다. 한 사람을 마음에 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마음을 갖게 되고 그 진심을 전하는 것은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살아가며 여러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고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 많은 시간 속에서 여러 명을 사랑하는 것과 그 마음이 그저 한 순간에 생겨버리는 것이 다르지만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러 형태를 가지지만 결국 하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결코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노르웨이의 숲 (ノルウェイの森)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20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