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책이 좋다고 느끼게 된 건 책을 막 읽기 시작해 두 번째로 구매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때문이었다. 2018년 가을, 변화가 필요했다. 여름에 이사를 했고 방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엔 작은 동산이 있어 5평이 채 되지도 않는 작은 방 안에선 조용하고 안락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일자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업무상 메일을 쓰다 메일 내용을 한참이나 고민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며 내가 정말 멍청해졌다고 느끼게 됐다. 나의 멍청함을 알아챈 순간, 더 이상은 멍청해지진 말자라는 이유로 고전소설을 눈여겨보게 됐었다.
책을 구매할 때 중고서점인 '알라딘'을 애용한다. 중고가에 썩 괜찮은 상태의 책을 구매할 수 있고, 같은 책이라도 책의 상태에 따라 가격이 근소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상태가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오래된 책들의 바래진 종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표지가 깨끗한 책들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접힌 자국이 없는 책을 만나게 되면 새 책을 중고가에 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에 내가 정말 똑똑한 소비를 한다는 생각에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이 뿌듯함을 처음으로 느꼈던 책이 바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다. 이 책의 표지는 검정 바탕이었기 때문에 흠집이나 자국이 나면 티가 나는 종이 재질로 되어 있었지만 그런 건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한 단면에 접힌 자국은 티가 나질 않아 새책처럼 보여 이 상태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가장 큰 독서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절대로 표지의 접는 선에 따라 책을 펼쳐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습관 중 하나는 마음에 드는 문장을 수집할 때 절대로 책에 밑줄을 긋거나 생각을 메모하거나 해당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지 않는다. 이 행동들은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거나 음료를 엎지르거나 하는 것처럼 책을 더럽히는 것과 아주 똑같은 행위이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고 나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독서모임을 통해 책을 메모지 쓰듯 바로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가는 회원을 처음 봤을 땐 신성모독과 비슷한 정도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책에 대한 금기사항들이 생긴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언젠가 책을 처분할 때 내가 중고책을 구매할 때처럼 최대한 깨끗하고 상처 나지 않은 책을 구매할 수 있게 판매를 하고 싶어서이다. 은은하게 종이 향이 곳곳에 배어있는 중고서점 안에서 누렇고 바래고 때가 탄 책들 사이에서 새 책처럼 깨끗한 책을 만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좋은 기분을 느끼길 바란다. 내가 느끼는 이 작은 행복을 누군가가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두 번째는 내가 직접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애지중지 써온 때 묻은 애장품을 선물로 주는 것도 선물로써 큰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책은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상대를 생각한 마음을 담아 책을 전해줄 때 온전히 나의 마음이 모두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때 묻지 않고 상처입지 않은 책에 마음을 담아 주어야 나의 마음도 더 진하게 남지 않을까. 새 책에는 나의 마음을 담을 수는 있지만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상대방을 향한 마음까지 담기지는 않을 테니 아무래도 내가 직접 읽었던 책을 선물하는 게 온 마음을 다한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내가 표지에 접힌 자국이 없는 깨끗한 책을 좋아하는 건 내 마음과 생각이 때 묻지 않고 상처 없이 온전히 담기길 바라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나의 책이 다른 이의 손에 닿았을 때 내가 느꼈던 작은 행복들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나의 마음을 다루듯이 책 한 장 한 장을 더욱 소중히 다뤄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