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 몽환적이며 살랑살랑한

by 강동희

회사에 연차를 쓰고 느지막이 일어나는 평일의 오전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주말처럼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없고, 어디론가 떠나거나 외출을 하기 위한 차 엔진 소리도 나질 않는다. 암막커튼에 어두컴컴한 방에서 잠을 깨 눈을 뜨면 방 안은 마치 해가 뜨기 전의 새벽하늘처럼 푸른빛이 돌며 어둡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내 눈엔 벽과 천장의 경계가 허물어 마치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몸을 일으켜 느껴지는 중력을 무시한 채 창가의 커튼을 걷으면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신비로운 햇빛이 순식간에 방 안으로 밀려온다. 바로 이 순간이 '잔잔하고 몽환적이며 살랑살랑한'이다. 평일 오전 늦잠을 자고 잠이 덜 깬 채로 커튼을 걷어 방 안으로 들어온 햇빛을 느끼는 이 순간, 이 감정, 이 느낌이 날 평화롭게 만든다. 푸른 하늘과 은은하게 따스한 햇살은 달달한 듯 고소한 한과 같이 한국적인 향이 느껴진다. 더없이 좋은 이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머릿속에 작은 잡념이 드는 찰나 깨져버리는 연약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행복감보다 짧은 행복이지만 마음이 가장 가득 차는 행복이다. 흔하게 느낄 수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고 마음을 간지럽혀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작고도 커다란 나의 한 부분라 더 좋아한다.


주말 아침도 비슷한 순간은 있지만 주말 아침의 주말스러운 특유의 분위기와 느낌이 있어 행복의 모양이 다르다. 주말 아침은 '으아아아'하고 포효하게 되는 폭발적인 느낌의 모양이다. 오히려 서너 시 사이의 늦은 점심 즈음돼서야 '잔잔하고 몽환적이며 살랑살랑한' 순간을 만들 수 있다. 이때는 추가로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차분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재생목록의 음악들이다. '차분한'에 저장되어있는 음악들은 알앤비/소울/포크 같이 은은한 느낌의 음악이 주를 이루는데, 내 감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곡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나다운 느낌을 들게 한다. 늦은 오후 노란빛을 띠는 햇살과 햇살에 변해가는 하늘색, 잔잔히 울리는 '차분한' 음악과 책. 필요한 걸 모두 갖춰놓은 채 머릿속에 생각을 비우고 몸에 힘을 풀면 '잔잔하고 몽환적이며 살랑살랑한' 순간이 만들어진다. 앞서 말한 순간의 행복보다는 조금은 작고 모양이 다르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행복이 나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게다가 오후의 순간은 내가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고 굉장히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나의 또 다른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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