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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Sep 06. 2021

고통의 음미

스멀스멀 느낌이 온다.      

머리 한 쪽 아스라이 먼 곳부터 고통의 전조가 보이고 있다.

눈을 감을 때 섬광 같은 것들이 지나가면 영락없다.      

머리 핏대가 서면서 깨질 듯 아픈 두통이 시작되고  몸이 아파온다. 머리에서 시작된 통증은 목을 타고 어깨로 팔로 손끝저림으로 그리고 위를 한 번 흔들어 결국 드러눕게 만든다.

고질병.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흔히들 고3병이라 부르던 그것이, 10대를 지나 현재까지 이어졌으니...     

참 희한한 것이 늘 아픈 건 아닌데 아프기 시작하면 그 증상은 같다.      

그럴 때면 진통제를 털어넣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고통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온몸에 약기운이 퍼질때 까지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푹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으니 내 편두통은 그냥 그러려니 동지처럼 받아들이고 지나갈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인문학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식으로 고통을 대해보기로 했다.     


두통이 시작되면 마음을 고요히하고 먼저 내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시했거나 아니면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나 차근차근 돌이켜보는 것이다. 의식을 내려놓고 하루  행동의 잔상을 따라가 본다. 어느 때는 마음이 너무 바빠 급하게 밥을 먹고 학교를 뛰어다니고, 또 어느 때는 쫄쫄 굶고 컴퓨터만 바라보았고, 어느 때는 가까운 사람 때문에 속상해서 밤새 뒤척이거나 등등 그런 사소한 것들을 되돌아 보기 한다.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다보니 자꾸 진짜 ‘나’에서 멀어지고 보여지는 ‘나’로 과장되게 서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잘하려고 하는 행동이 몸의 구김을 계속 만들어 가 강박과 긴장, 집착과 망상으로 몸 여러 곳이 구겨질 때 두통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고통을 음미해 보기로 한다.      


깨어질 듯한 두통도, 뒤틀리고 있는 위장의 통증도 받아들이고 반듯한 자세로 느껴본다. 하나하나 구김이 펴지는 고통을 아픔이라기 보다는 본래대로 돌아오는 과정 즈음으로 고쳐 생각하며,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져 오는 힘듦을 이해하면서 몸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괜찮아’     

머리를 쥐어박고, 목 뒤를 세차게 두드리던 손을 거두고,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기 시작한다. 남들 앞에서 꼿꼿하게 자존심 센 척, 고고한 척하느라 굳어진 몸은 실상 스스로를 몰아가고 부정하고 있는 마음이 나타난 것인듯 싶어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로 하며, 따뜻하게 다독거린다.      

 몸의 긴장을 풀고, 남을 미워하고 음해하는 마음을 직면하여 떨쳐 내고, 스스로가 만든 망상을 벗고 편해짐을 의식적으로 택하는 것이다.     


스스로 혼자서 할 수 일은 많지 않다. 밥 먹고 씻는 것도 혼자만의 동력인 듯 싶어도 어린시절 누군가로부터 절대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일을 할 수록, 사람을 만날 수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함께 해야할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 그러나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남에게서 발견하게 될 때 질투와 경쟁으로 더 나아 보이려는 습관이 자주 튀어나온다.   

    

늦은 밤 회의를 마치고 하나하나 말들을 생각해 본다. A의 명석함과 B의 넉넉함, C의 유창한 진행실력이 참 부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기로 하자. 질투보다는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옳은 방법이다. 또한 그것이 나의 몸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다.      

토닥토닥...     

보도 블럭 하나하나를 밟으며 뿌지직 들리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찬바람을 온 얼굴로 맞고 느끼며, 나를 둘러싼 것들을 감각으로 느끼며 살아 있음이 사뭇 경이롭다.


 최선을 다하지만 쥐어짜듯 애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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