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향기 Sep 13. 2021

제자 상대 설명서

“혹시, oo 중학교 선생님 아니세요?”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어려 보이는 직원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란 나를 보며 직원은 마스크를 살짝 내린다.     


 “선생님, 전 00이에요. 기억하실까요?”


이제부터는 머릿속에 무엇이 있든 정지하고, 제자들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웃음을 지으며 찬찬히 말해 준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예기치 않은 제자들의 등장은 항상 당혹스럽다. 아는 척하며 반가워 해주는 것은 감사하고 고마운데, 뇌용량의 한계를 늘 체감하며 입력된 양보다 상실되는 기억의 양이 많은 나로서는 난처한 일이기도 하다. 제자들을 기억하고 아는 척하며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나를 알아보는 제자가 뚜렷한 특징이나 사건이 없다면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름 자체 설명서를 통해 대응한다.


그 설명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황 1. 이름과 얼굴이 기억이 나는 아이일 경우는 과거의 일을 소환하며 긍정적인 말을 해줄 것!     

‘와 ~! 뭐야. 이렇게 멋지게 달라지다니? 선생님이 못 알아보겠다.’ 등의 말을 하며 ‘예전에 너는 볼살이 통통했는데’ 등등 외모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진술하여 너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이 경우는 제자와 나 사이에 뚜렷하게 기억할 만한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제자가 뛰어났다거나 혹은 특이했다거나 아니면 나를 괴롭혀 잊을 수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나를 괴롭혀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는 다행히도 아는 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주 간혹 아는 척하는 아이가 있는데 본인이 나를 괴롭혔다는 것을 모르거나, 잊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괴로운 기억을 상기시키는 경우를 제외하곤 뛰어났거나 특이했던 제자와의 대화는 대체로 즐겁다. 이야기 주제도 공유하고 있던 과거의 추억들이어서 잠시나마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상황 2.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가물거릴 때, 이럴 경우는 그나마 괜찮으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보를 얻을 것!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눈여겨보았다는 증거이기에 “어, 너?”라고 하며 웃음을 띠며 대응하는 것이 좋다. 웃는 얼굴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알고 있다는 뜻이므로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 다만 이름이 ‘다영이? 다은이? 다정이?’ 이렇게 비슷한 이름을 열거하며 게임을 맞추기를 하듯이 말할 때가 좀 있다. 그래도 이름 중에 글자 하나 정도는 맞추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하지 않고 맘껏 이름을 맞추려고 애를 쓴다. 이런 태도는 제자도 나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상황 3. 이름과 얼굴이 기억 날 듯 말 듯 가물가물한 경우부터는 곤란해진다. 그럴 땐 질문이 중요하다. ‘네가 몇 반이었지? ’,‘담임선생님이 누구셨더라?’ 등으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을 할 것!     

여자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은 너무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보면 제자 아이들이 실망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샘! 저는 샘을 기억하는데….’라며 자기 이름을 슬그머니 이야기할 때 타이밍을 잘 맞춰“아! 기억난다. 근데 너 너무 예뻐져서 (혹은 달라져서) 못 알아보겠다”라며 준비한 과장된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제자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말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잠시 웃고 지나가기도 한다.     


상황4. 가장 난감한 경우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이다. 그럴 땐 솔직히 고백할 것!     

‘미안하다. 선생님이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나네. ’라고 말이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너무나 평범했거나 혹은 나와 인간적인 교류가 없고 그냥 같은 공간에 시간을 보낸 경우일 것이다. 그러면 너무 겸연쩍다. 특히 제자 아이의 동행이 있을 때 뭔가 더 민망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제자가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연기한다. 상황 4는 만남이 끝나고 나면 꽤 찝찝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아이를 기억해 내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며 앨범을 찾아보며 시간을 할애하여 다음을 기약한다.     


다행히 나를 알아보는 직원은 어렴풋이 내 기억 속에 있는 아이였다. 상황 2! 다행이다. 까무잡잡하고 통통한 아이였는데 뽀얀 얼굴에 쌍꺼풀 수술을 해서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찬찬히 보니 옛 얼굴이 남아 있어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의 설명서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다 보니 더 또렷해졌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개성 있고 나름 글을 잘 썼던 야무진 느낌 또한 함께 떠올랐다. 제자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느라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거들었고 동시에 그 아이의 동선을 따라 내 눈도 움직였다. 선생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밝혀졌으니 이제부터는 편하게 앉아있기는 글렀다 싶어 식구들과 얼른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했다. 갑자기 시키지도 않은 찌개가 서비스로 나왔다. 서빙 직원이 아르바이트생이 선생님이라고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드린다는 말에 부담이 확 커졌다. 찌개에 맞게 밥도 두 공기 더 시키고 잘 드시나 확인하러 홀에 나온 제자 아이와 눈을 맞추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제자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힘든 시기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너 참 대단하다’라며 치켜세워주고 사장에게 ‘우리 제자 열심히 하는 아이라 잘 봐달라’고 너스레도 떨고 나왔다. 깍듯이 인사하는 제자를 보며 파이팅을 외치며 나왔지만, 사실은 얻어먹은 것이 정말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 집에 다 와서 제자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직원들과 나눠 먹으라고 주고 올 것을 입 닦고 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설명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가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하는 제자에게 얻어먹을 때는 뭐라도 손에 쥐여주고 올 것!     



“ 공부 안 하면 저래 된다.!”     

 예전에 행사 도우미를 하는 사람들 보며 엄마가 했던 말이다. 나 또한 말은 안했으나 동조한 부분이 있었다.

개업한 가게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온종일 노래 부르고 야한 춤을 추며 눈요기가 되는 그녀들. 피에로 분장으로 풍선을 돌돌 말아 인형을 만들어 주는 그들을 보며, 학창 시절 얼마나 공부를 안 하고 게을리 살았으면 저런 일을 할까 했다. 사실은 고등학교 때 날라리 친구가 그 비슷한 일 하는 것을 보고 내 생각이 더 굳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다닐 때 식당일을 했다. 절친의 아르바이트를 대타로 하게 된 것이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몇 일간 해주기로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석 달 정도를 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가장 알아주는 고급 고깃집이었는데 일도 분업화되어 있어 손님 접대하며 고기 자르는 홀 서비스와 무거운 음식 쟁반을 나르는 음식 운반 아르바이트가 짝을 이루어서 했다.  홀 서비스가 정규직이었다면 힘든 음식 서빙은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유니폼도 달라서 홀 서빙은 나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이었는데 아르바이트생들은 얄궂은 천에다 식당 상호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는 티셔츠를 입고 일을 했다. 나는 나름 이런 일도 경험으로 해보자며 거만하게 시작했었지만, 과외 아르바이트가 잘 구해지지 않았던 조급한 마음이 숨어있었다. 주말에 6시간 일하고 나면 온몸에 고기 향기가 베어져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주위 사람들이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눈치 주기 일쑤였는데 그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다녀야 했다.     

어느 날 우연히 중학교 동창이 왔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했고 당시 '재벌'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던 부유한 아이. 친하지는 않았지만, 학생회를 함께 했기에 얼굴 정도는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하필 내가 서빙해야 하는 테이블에 앉아버리는 바람에 괜히 죄지은 것도 아닌데 위축이 되면서 음식 서빙을 하는데 손이 떨렸다. 그 친구는 나와 눈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는 척을 하지 않기에 나도 그랬다. 음식을 다 세팅하고 나서 뒤돌아서는데     

“중학교 동창인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 가서 많이 놀았나 보네!”      

라는 말이 들려왔다.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해도 되었을 텐데, 손 떨며 쫄 상황도 아닌데, 뒤통수에다 들으라고 한 말에 대꾸 한마디 해도 되는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제자 아이를 보며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참 대견하다. 코로나로 불경기이고 살기 팍팍하다는데 생기있게 웃으며 제 몫을 하는 아이를 보니 예전 생각이 떠올라 부끄럽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만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꼰대들이 있을 뿐이었다. 날라리 친구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한 것이고, 나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 한 것이고.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저리 내 맘대로 재단하며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제자 상대 설명서에 내용을 첨가한다.        

  

제자가 하는 일(아르바이트)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     

작가의 이전글 고통의 음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