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향기 Sep 21. 2021

황야의 마녀와 스마트 폰

" 요거는 우째 하노?"     

 생일 선물로 사드린 스마트폰 사용법을 몰라 쩔쩔매시는 엄마는 우리 가족이 올 때마다 궁금한 기능을 물어보신다.


 "할머니 저번에 설명해 드렸는데.... 요거는 이렇게 누르시고요...."     


 손녀의 설명은 매우 간단하고 눈앞에서 바로 시연을 보이지만 엄마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보고도 따라가시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있어 봐라! 요래 하면 되는 기제? "   

  

하며 손가락을 요리조리 눌러보지만 결국 잘 되지 않자 홈버튼만 눌러 배경화면으로만 돌아오고 만다.

그러다 부화가 치미는지     


 "내는 이런 거 못하겠다. 다 쉽다카드만은 나이 드니까 바보가 돼가지고 알려 줘도 무신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나이 70이 넘은 부모님 두 분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효도폰 보다 스마트폰이 더 저렴하고 좋고 영상통화도 가능하니 멀리 사는 자식들 얼굴이라도 보시라고 사드렸더니 내 생각일 뿐 그건 그저 전화기 노릇만 하고 있다.          


 " 세상이 나이 들고 무식한 사람은 자꾸 소외시키는 것 같다. 노인대학에서 구연동화 배웠다이가. 발표회도 하고 그랬는데 우리는 새끼들이 멀리 사니까 오는 사람도 없제. 우리 사진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놨으니 보이소! 하는데 당최 컴퓨터가 있어야지. 아니다 있어도 뭐 접속할 줄이나 알아야 할 거 아이가. 손도 말을 안 들어서 자판치기도 어렵고.. 하이고... 할매들은 요즘에 바보다."     


"엄마처럼  대단한 사람이 무슨 바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시 한번 눌러봐!"     

     


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황야의 마녀'          

멋진 모피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고자 마법을 부렸던 그녀가, 돌봄과 가족이 필요한 노인이 되는 장면이 떠오른다.

마법의 능력을 가진 멋쟁이 그녀가 하루아침에 마법을 잃고 평범한 할머니가 되었을 때 그 상실감. 그녀의 이름처럼 황야에 홀로 남겨진 듯한 그 상실감을 두려워했기에 기를 쓰고 마법을 부려 젊음으로 자신을 위장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도 젊어 보이고자 염색도 하고, 화장도 하고, 젊은 스타일로 옷을 입는다.  60대, 70대의 나이더라도 더 젊어 보이고자 하는 마음.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그 마음은 욕망이라기보다 생존의 필살기인지 모른다.          

환갑, 고희로 나이 듦을 부러워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신들의 부모님은 지극히 모셨지만 정작 당신들은 고령화, 초고령이라는 용어에 묶여 홀대받는 처지에 살다 보니 '노인'이 되는 게, '노인'으로 살아가는 게 두려우시다 한다.     

  노인 일자리를 얻어 생계 전선에서도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는, 이 시대에 스마트폰 사용법을 잘 배워야 한다고 굳게 생각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일하던 노인이 카톡을 쓸 줄 몰라서 곤혹을 치른 모양이다.

  김 영감님은 장애인 아들, 치매를 앓는 부인이 있는데 노인 일자리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했단다. 그가 하는 일은 길거리 정비였다. 조별로 진행하는데 그날은 비가 하도 많이 와서 동사무소에서 각 노인 팀장들에게 일을 하지 말라고 카톡으로 보냈고 팀장들도 각 팀원 노인들에게 카톡으로 알렸다고 한다. 김 영감님은 평소에도 카톡이나 문자를 가르쳐줘도 익히지 못했더란다. 혼자 세찬 비를 맞으며 길거리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민원을 넣는 바람에 동사무소가 난리가 났고, 팀장이며 팀원이며 할 것 없이 김 영감님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고 했다. 일지를 쓰는 일이나 출석 체크도 스마트 앱으로 하고, 소통도 모두 카톡으로 진행되는 게 다반사인데 영감님이 속한 팀은 전화 기능만 쓰는 김영감 때문에 불편함을 겪는다고 불평이 많다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는 김 영감이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더 다진 듯 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스마트폰 기능을 메모 해 가며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엄마와는 달리 아버지는 마법을 포기하시고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보청기를 끼고 틀니를 하면서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 것 같았다.     


 "내는 잘 못한다. 느그들이 한창 때다. 고마 알아서 해라!"  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보기만 하신다.  

   

 삶의 연륜이 스마트 폰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았으면.

 세상이 너무 스마트하게 변하지 말기를...     


 부모님이 스마트폰에 밀리지 않고 계속 황야의 마녀 마법을, 아니 그 에너지를, 아니 나이 듦의 당당함을 가지고 사시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제자 상대 설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