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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Sep 27. 2021

명품이 뭐길래?

   

“어머,,, 사모님. 어서 오세요.”     

지인의 결혼식을 마치고 집 지키고 있을 두 아이들을 위해 간단한 분식거리라도 사려고 들어간 곳에서 젊은 여사장이 불쑥 인사말을 건넨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맛이 궁금하여 며칠 전에 들렀을 때는 여느 장사 집처럼 인사만 건네더니 오늘은 그녀의 과잉친절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려 가방을 드는데 난데없이,     

“들어오시는데 가방이 아주 눈에 띄더라고요. 멋지네요.”라고 말한다.     

‘아!’     

얼른 계산하고 가방을 몸 뒤로 숨긴다. 이 작은 분식집에 나보다도 가방이 더 존재감 있게 느껴지는 부담감에 분식거리를 얼른 집어 들고 나왔다.     

멋지긴 하지만 불편한 이 가방은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고가품이다. 면세점에서 미친 가격 할인으로 세일을 한 탓에 시중가에 50% 이상은 싸게 주고 샀다며, 친구들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내 품에 안긴 녀석이다. 늘 허접하고 낡은 가방을 메고 다니는 부인이 안쓰러워 그랬을까, 아니면 홀로 놀러 간 미안함에 친구들과 결탁하여 집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전 안 하던 행동에 요즘 말로 엄청난 득템을 한 격이다. 어찌 되었던 남편이 말한 정가는 확인을 해보지는 않았으나 어마어마한 가격임을 보여주듯 보증서와 별도의 보관 파우치가 딸려와 난생처음 그런 걸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물건’은 나를 참 곤란하게 했다. 첫 번째로 집에 마땅히 가방을 보관할 만한 공간이 없는 게 문제였다. 성격상 가방을 험하게 쓰는 스타일이다 보니 명품가방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장롱 속에 두려 했더니 가방이 짓눌리면 모양이 변형될 것 같아 공간이 확보된 장롱 위쪽으로 옮겼다. 원래는 여행용 캐리어를 두는 자리인데 넉넉한 자리 확보를 받은 ‘그 물건’은 자신의 크기보다 2배는 큰 공간을 차지하였고, 혹시나 습기가 찰까 싶어 습기제거제 하나도 차지하였다. 그 녀석보다 훨씬 큰 여행용 캐리어는 이것저것 몸속에 관련 없는 여러 가지를 쑤셔 박힌 채 베란다 창고 구석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두 번째로 곤란한 점은 가격 대비 사용빈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그 물건’은 결혼식과 같은 격식 있는 자리, 아우라가 필요한 곳 , 40대 후반의 여자가 명품은 들고나가줘야 꿀리지 않은 그런 자리   (예를 들면 동창회 같은 곳)에만 동행한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두세 번 밖에 사용한 적이 없다. 거의 기억에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딱 필요한 행사에만 생각나다 보니 많은 시간을, 넓은 공간에 모셔져 있다. 격식이 필요 없는 자리에 들고 갔다가는 낭비와 허세의 아이콘이 될까 봐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분식집 여사장의 말에 가방을 뒤로 숨길 까닭이 이런 이유다. 세 번째의 곤란한 점은 보기는 예쁜데 넣을 물건이 너무 한정적이고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뭔가 무거운 것이나 큰 것을 넣으면 보기가 싫을까 싶어 안에 넣는 것도 얼마 안 되고, 필요 이상으로 수납공간이 분리되어 장식품이 달려 있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집으로 오면 잽싸게 들고나간 시간보다 닦고 세수시키는 시간이 더 길다. 거기다 또  ‘그 물건’에게 기를 뺏기지 않으려면 잘 차려입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다 가방 하나 생긴 여염집 아낙네가 아니라 이런 것들쯤은 몇 개씩 두고 고르며 다니는 사모님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한다. 그러다 보니 가방에 걸맞게 수준 있는 옷을 맞춰 입고 싶고, 가방 속 지갑도 같은 격을 갖춰야 될 듯싶어 이리저리 골몰하고 자꾸 구매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도 ‘이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한심함을 알지만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허접해 보이기는 그보다 더 싫은 마음이 자리 잡았다.


명품 가방을 보고 있노라면 나를 곤란케 한 또 다른 ‘그 물건’에 대한 경험이 떠오른다. 대학교 다니면서 한 손에는 전공 책을 들고 다니며 가벼운 가방을 메는 게 로망이었던 지라 간편하게 들고 다닐 편한 손가방을 사려고 시장에 갔다. 나에게 어울릴 만한 것을 찾다가 분홍 바탕에 큰 꽃무늬가 그려져 있고 뭔가 모를 로고가 있었던 가방을 발견한 순간, 색깔도 예쁘고 크기도 적당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 학기 동안 이 가방을 줄기차게 메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문제는 명품 구제 샵을 운영했던 이종사촌 언니의 등장으로 가방의 정체가 드러나면서였다..     


“야! 이렇게 표 나는 명품 짝퉁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 명품 짝퉁도 급이 있는 거야. 명품 하고 거의 똑같은 걸 특 S라 말해. 근데 이건 뭐랄까. 나이키를 따라 만든 나이스야. 루이뷔통 흉내 낸 건데 VL이 아니라 XL이라고 쓰여 있잖아.”     


그 말에 얼굴이 빨개지며 어디론가 숨고 싶었던 감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명품 로고를 전혀 몰랐기에 더 놀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에 공부에 바삐 사느라 처량한 몰골이 ‘그 물건’에 덧입혀져 내가 초라하게 평가될까 봐 속이 상했다. 그날 이후 그렇게 잘 들고 다니던 ‘그 물건’은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집안 구석에 박아 놓아  바깥 구경을 할 수 없게 했다.


몇 해 전 부모님이 이사를 가며, 결혼 전 내 물건을 모두 정리하여 한 상자를 주셨다. 그 속에 대학생 때의 ‘그 물건’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장롱 깊은 곳에 처박아 두고 신경을 끄고 있었는데 엄마는 나름대로 아끼던 것이라 착각하고 챙기신 듯하다. ‘그 물건’을 꺼내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세월이 지났고 그리 핍박을 받았는데도 모양도 색감도 그대로, 변하게 없다.     

 요즘 나는 대학교 때의 ‘그 물건’을 시장에 갈 때 들고 다닌다. 간혹 잠시 나가야 할 때도 쉽사리 집어 들고 가기 좋아 나갈 때가 종종 있다. 그냥 가방이지 뭐.      


4년 전에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다. 출국할 나라가 프랑스였고 때마침 유로화가 환율이 떨어져 명품 구매의 적기라, 함께 여행 간 팀들이 가방을 100만 원 이상 더 싸게 또는 한국에 없는 신상을 획득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나는 ‘그 물건’을 볼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그냥 심드렁한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명품 재테크에 투자하는 시대 흐름을 모르는 무지가 부끄럽기도 했다. 명품뿐이랴 주식도, 부동산 등등에도 재능이 없고, 그래서 관심이 없다. 그냥 무지 성실하게 근면하게 한 두 푼 모으는 소소한 재미로 살뿐이다.      

 요즘 나는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가볍고 수납이 잘되는 에코백이 뭘 들고 다니기가 좋기 때문이다. 남편이 사준 명품백은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는 한 번도 들고나간 적이 없다. ‘그 물건’은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 아래에서 뜯어진 에코백의 손잡이를 조선시대 여성처럼 바느질을 하며 '그 물건'을 올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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