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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Mar 19. 2022

돌아온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임신한 상태에서도 감기를 달고 살았다. 지금이야 출산 전 휴가를 쓸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흔하지 않아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는 무식하게 출산 전까지 출근했다. 잠도 깨지 않은 4살 딸아이를 담요에 말아 차에 태우고 신호등 중간중간 깨우며 주먹밥과 깍둑썰기한 사과를 입에 넣어주고 겨우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치마를 붙잡고 우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게 늘 하루의 시작이었다. 


 전직 학생부장에서 관리자로 승진한 교감 선생님은 교문 앞에 서서 용의 복장 불량한 학생과 교사를 단속하며 지각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이들에게도 곱지 않은 레이저를 쏘았다. 나는 단골 지각 교사였다. 우는 큰아이를 달래다가 화가 나서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자동차 페달을 밟았건만 속상하고 급한 마음과 달리 도로는 자주 내 편이 아니었다. 6시에 일어나 7시에 집을 출발해 직장에는 8시 30분을 넘어야 도착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나의 하루 에너지가 쏙 빠져나가는 듯했다. 어느 날은 평소보다 늦어져 9시가 넘어버렸다. 운이 좋게 교문을 지키고 있던 교감도 안 보여 안도를 하며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가는데, 2층 계단에서 교감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뒤돌아서 냅다 뛰어갔다. 부른 배를 잡고 뛰면서 문득 ‘이게 무슨 짓이야?’란 생각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유치하게도 나는 잔소리를 피하려 도망가는 아이와 같았다. 착한 어린이 병에 걸려 나쁜 행동이 들키면 어쩔 줄 몰라 도망가는 아이. 교감이 오후에 슬쩍 내가 있는 사무실로 왔다. 못마땅한 눈을 쏘아대며 아무 말 없이 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내일부터는 당당하게 지각하리라 다짐했다. 


  이날의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부장과 교감의 시선을 느끼고 위축되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는 일상에 최선을 다했고, 할 수 있는 노력을 쏟았다. 좋은 평판을 얻고자 어린아이를 더 빨리 깨우고 다그치며 떼어 놓을 수 없는 노릇이고, 임산부로서 뱃속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출근을 더 일찍 서두르는 것도 옳지 않았다. 그때 내 상황은 배려와 도움이 필요했지, 스스로를 옭아매며 채찍질할 시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퇴임한 당시 교감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나를 단골 지각 교사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얄밉게 몰래 계단을 올라가는 불량 교사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을. 가장 난공불락 육아 전쟁에 너덜거린 내 꼴만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를.     


 두 아이는 훌쩍 컸기에 요즘 나는 비교적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이른 아침 사무실에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틀어 놓으며 환기를 하고 조용히 맞이하는 시간이 너무 좋다. 수업을 끝내 놓고 이것저것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계획하며 글감을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것도 즐겁다. 

 4,5살 두 아이를 키우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옆 선생님 일을 슬쩍 대신하고, 올해 신규 발령으로 모든 게 낯선 선생님의 업무 처리를 거든다. 그들에게 필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배려와 도움을 건네는 것이 곧 17년 전의 ‘나’에게 여유를 선사하는 일이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상황을 개선 혹은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며 또 한 편으로는 역지사지로 타인을 돕는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잘하지 못하는 것, 안 되는 것을 혼자 전전긍긍하며 자책하고 있지 않나? 

나는 종종 자문해본다. 

남을 도울 마음이 있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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