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향기 Apr 03. 2022

선배를 그리워하며

 나는 여고를 다녔다. 한 반에 50명 소녀들이 가득 차 있는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나는 영도다리를 건너 남포동 중심지에 있는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는데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나를 보며 바다 건너 유학을 왔다며 한 번씩 놀리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매우 외로웠고 고독했다. 집안 형편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고, 가난한 동네에서 인문고를 다니는 몇 안 되는 여학생이었는데 부자 동네 중심에 있었던 학교에서 눈에 보이는 경제 격차에 심적으로 힘들었다. 당시 선생님들은 가정방문을 했는데 우리 집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으나 내색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내게 가장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은 선배들이었다. 도서반 활동을 했던 나는 언니가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녀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당시 도서반은 같은 지역의 고등학교와 연합하며 독서 토론회에 참여하여 토론활동을 했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책을 읽는 법, 토론하는 법, 그리고 토론회 매너 등을 가르치며 학교 적응에 도움을 주는 멘토였다. 동기간에 갈등으로 도서반 운영에 위기가 올 때나 혹은 후배들이 기어오른다 싶을 때 무섭게 호통을 쳐서 간혹 곤혹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고 홈커밍데이 때 학교를 방문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3 시절 겪었던 그들의 경험담은 후배들에게 한줄기 강렬한 빛이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 학년에 15명 정도 되지 않은 학과를 다녔다. 우리 과는 사범대 내에서도 인원이 너무 단출하여 체육대회나 단합행사에 모두가 참여해야 다른 과와 숫자를 맞출 수 있었다. 그런 관계로 선후배가 각별했다.     

 물론 특이하거나 부정적 태도로 관계에 위기를 가져오는 선배들도 있다. 권위의식에 가득 차 후배들을 하대하며 상하관계를 분명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도 있다. 특히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과도한 음주로 통과 의식을 강요하거나 성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 나는 그런 불쾌한 선배가 등장할 때마다 이를 저지하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고자 한 사람들이 있어 원만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학창 시절의 다양한 만남과 교류는 인생에서 두고두고 꺼낼 수 있는 낭만과 추억과 직결된다. 어리바리한 신입생 때 선배의 “밥은 먹었니? 학식 먹으러 가자!”라는 말에 한 없이 따뜻함을 느꼈고, 800원짜리 식권 두 장 내미는 멋진 모습에 감동하지 않았던가.

또한 그들은 내성적인 후배들이 평생 솔로로 있을까 걱정하며 소개팅은 물론이고 단체 미팅 주선을 해주기도 했고, 실연의 아픔을 밤새도록 위로해주며 곁을 지키며 다독거려 주기도 했다. 그뿐이랴. 샌댈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보다도 더 정의를 부르짖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시위에서 행동하며 온몸으로 실천하였다. 내 인생에서 그들의 대가 없는 순수한 행동은 참 아름다워서 동화 같다.


   선배와 교류가 없는 학교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올해 대학생이 된 딸은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대학 동기도 만나기 어려운 판국에 선배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동아리에 지원하긴 했으나 동아리실이 현재까지도 모두 폐쇄가 된 상황이라 아쉽다는 말을 했다. 아직까지 선배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하니 나로서는 딸아이의 대학 생활을 상상하기 어렵다. 너무 건조하고 삭막하다.

 2월에 우연히 만난 제자는 지방 교대로 진학을 했는데 지난 2년간 한 번도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 자체를 가 본 적도 없을뿐더러 친구도 선배도 대면으로는 만난 적이 없어 답답해 죽겠다 했다. 올해 군대를 가야 하는데 제대 후 학교 적응이 더 걱정이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착잡했다.


어느 해부턴가 중고등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학교폭력과 연관되어 왜곡되고, 대학에서는 군기잡기식 OT문화로 인해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질된 부분이 부각되더니, 이제 코로나 19가 되어서는 모든 선후배 문화가 단절되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선배는 후배들과 조직 문화를 공유하고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며 적응을 돕는다. 그들의 경험은 너무나 생생하기에 후배들은 그들의 경험담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며 문제 해결을 하며 더 나아가 소속감을 느낀다. 또한 살뜰히 챙겨주는 선배와 끈끈한 유대감으로 인생 친구가 되기도 하지 않던가. 그들을 보며 배웠던 대로 나도 후배를 챙기는 선배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간관계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나는 우리 아이의 대학 생활이 더 풍부해지기를 바란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경험하며 배려와 고충을 느끼며 하나씩 인생의 고비를 만나 해결해 나갔으면 한다. 책과 공부가 줄 수 없는, 오로지 인간에게서만 배울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을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교장의 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