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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May 22. 2022

아들의 연애

고등학생 아들이 연애를 한다. 지필고사 기간에 독서실을 다니며 친구들과 스터디한다고 하더니 실상은 아닌가 싶다. 딸이 카톡 프로필에 심상찮은 문구가 있다며 물어보라 했다.

'D+13 '    

13일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썼는데 늘 카톡으로 대화했어도 프로필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하긴 최근에 행동이 이상했다. 늦은 밤까지 SNS를 하고, 줌으로 비대면 모둠 수행평가를 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사실은 연애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인형같이 예쁜 아이를 흠모했다. 초등학교 때는 아역 탤런트 역을 제안받기도 한 여자아이에게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여자아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바람에 아련함만 남고 끝이 났다. 중학교 시절에는 골격의 성장으로 가장 못생긴 시절이었는데 거기다 몸까지 약해서 빼빼한 모습이었으므로 연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구와 운동을 좋아하는 터라 연애보다는 두루 어울리며 자전거를 타거나 야구놀이를 했기에 그 모습에 늘 안도했었다.      


아들은 우리 가족 중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연애를 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신기해하며 계속 “진짜야? 뻥치지 마!”를 반복했다. 아들은 여자 친구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거기다 슬쩍 사진까지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정말 속없는 녀석이다.     


 나는 엄마로서 고등학생의 연애가 탐탁지 않다. 한창 학업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흔들릴까 봐 걱정된다. 더구나 상대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데 아들이 알려주기는 만무하다. 아니나 다를까. 1차 지필평가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그때부터 나의 핍박은 시작되었다. 네가 집중하지 못해서, 여자아이한테 빠져서, 지금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 무지를 계속 꾸짖기 시작했다. SNS 금지, 일찍 귀가, 부모에게 연락 자주 하기 등 꼰대 엄마처럼 간섭하고 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모처럼 지인들과 등산을 하러 갔다. 독립문역에서 안산 자락길을 걷기로 했는데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로 모인 듯 인파가 대단했다. 이리저리 사람에게 치이면서 가볍게 걷고, 카페에 두런두런 앉아 사는 이야기를 했다. 한 지인이 신문에서 본 이야기를 했다.      

 통계청에서 인구동태 코호트 DB를 공개했는데 83년생에 대한 내용이었다.  83년생의 1/3은 미혼이고 83년생 남자 중 미혼 비율은 40.6% 라고 다. 또한 83년생의 65%가 무주택이고 미혼의 경우는 83%가 무주택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집도 없으면 결혼하기도 힘들어!” 툭 내뱉은 사람의 말에 수긍하는데 누군가 불쑥

  “사랑에 눈멀어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얼른 시켜야 그나마 결혼이라도 할 수 있는 거야.”란 말을 했다.           

결혼은 사랑공동체였던 두 사람이 경제공동체, 거주 공동체, 운명공동체가 되는 결단이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보다도 더 각오해야 할 것이 많다.

국가가 발생한 이후로 대부분은 결혼 적령기를 정하고, 결혼을 장려하며 출산을 통해 가문의 대물림과 노동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 왔다. 국가에 의해 결혼은 강제되었고 엄격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개인의 선택과 의사에 의한 사랑과 결혼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최근 고도화된 사회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더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한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데 오히려 포기를 한다는 것이 참 슬폈다.

   

 현관문을 여니 아들은 다정하게 전화를 하고 있다. 목소리 톤으로 봐서 여자 친구와의 통화임이 분명하다. 사랑을 시작하는 아들을 보며, 오늘 등산길에서 보았던 연한 어린잎들이 무성한 나무들이 생각났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생동감이 넘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연애하는 아들도 그런 모습이다. 아들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선물처럼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을 먹다 딸이 한 마디 던진다.

“ 엄마! 나도 연애하고 싶어!”

 아들의 넘쳐나는 생명력과 생동감의 연애세포를 딸도 느낀 거겠지?

“그래. 너는 직장 먼저 구하고 나서 집 있는 남자랑 연애했으면 좋겠어.”     

음. 마음과 현실은 차이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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