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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May 15. 2022

맑은 날만 계속되면 가뭄이 온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이번 주 계속되는 우울감을 겪으며 어젯밤에 나에게 한 말이다.

최근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는 날이 많아졌다. 특히나 하루를 정리하는 밤이 오면 더욱 그랬다.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직장에서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올해 연구회 활동이나 공부 모임을 많이 신청했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갖고 싶다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과부하. 읽어야 할 책, 발표 준비도 많아지면서 버거움이 느껴졌다. 우선순위를 매겨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할 지경이다.

 내가 왜 문어발식 공부를 할까 생각해 보니 성과를 얻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성과를 얻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동료 교사들 특히 후배 교사들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껴서이다. MZ세대로 일컬어지는 동료 교사들, 특히 20~30대의 젊은 선생님들의 연구 활동과 성취 의욕을 보며 자극을 받고 그들 중 일부는 벌써 승진에 관심 갖고 준비하고 있기에 내가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무능으로 느껴진다. 또  멋진 경력교사의 연륜을 갖고 싶다는 상상도 한 몫 거들었다.

 나의 교직 생활은 늘 바빴다. 열심히 수업 준비하고 생활지도를 했다고 자부하며 어디서든 당당히 말할 수 있는데 이건 교사들의 너무 평범한 일상이다. 그것을 자료화하여 유목화하고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기며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의미화하지 못한 것들은 잊기 쉽고 평범한 것이 되기에 나만의 전문성을 찾고 싶었던 게다.     


둘째, 너무 안정 지향적 삶을 살다 보니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럽다고 느낀다. 요즘 내 동료들은 부동산, 주식, 코인 등을 공부하며 금융 수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15년 전 주식 폭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안고 사는 일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우리나라가 야수 자본주의 색채를 띠며 격차를 만들어가니 불안해졌다. 특히나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 문화 격차, 삶의 격차로 이어지며 보이지 않는 신분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면서 나의 행복이 아니라 자식 세대를 위해 자산을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부모 찬스'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뉴스를 보며 자꾸 든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알면 그건 정보가 아니라 쓰레기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셋째,  자녀 문제이다. 두 아이는 너무 성실하고 인성 좋고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 하지만 성적이 매우 낮은 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험 점수가 낮다. 수행평가나 과정 평가에서는 발표, 자료 정리 및 토론도 잘하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험에 유독 취약해 등급이 낮다. 과외나 학원 선생님, 학교 선생님들도 별다른 조언을 해주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 같이 ‘길게 보면 분명히 성공할 거예요.’라지만 큰아이가 죽어라 열심히 했지만 전문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부모의 전략이 부족한 듯싶어 정보력 없는 엄마의 무능함이 미안하다. 작년 큰 아이는 결석이나 체험학습을 단 한번도 쓴적이 없다. 친구들은 코로나로 가정학습을 쓰고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아이는 성실하게 등교했다.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수많은 입시 정보와 전략들을 보지 않고 정공법으로 맞서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끊어낼 수 없다.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데 타인과 비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인류의 발전 동력이기도 하다.

  비교하고 경쟁하며 네 것을 뺏어야 내 것이 생기는 구조는 더 정교해지고 교활해졌다.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불안과 우울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오늘은 나만의 행복법에 연연하면서 현실을 그냥 덮어 버린 채 눈 가리며 긍정 해법에 만족하고 싶지 않다.      

 자존감을 높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내가 무척이나 애쓴 모양이다. 잘하고 싶어서 온 우주의 기운을 내 안에 모아 종종거리며 생활하는 것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오늘 실컷 우울해하고 바닥까지 내려가 볼 작정이다. 속상한 마음을 엉엉 소리 내며 눈물을 쏟고, 아이처럼 두 다리를 접었다 뻗었다 해 가며 온몸으로 감정표현을 해야 겠다.


맑은 날만 계속되면 오히려 가뭄이 온단다.
내 몸이 살기 위해 촉촉한 눈물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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