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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May 29. 2022

잃어버린 나의 충동을 찾아서

나는 계획적인 것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무엇이든 미리 준비해 놓으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하기 싫은 일을 만났을 때이다. 머릿속에는 계획을 다 짜 놓고도 실행을 미루며 마지노선까지 나를 밀어 넣고 불안해한다. 실행을 미루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마감 전날 늦은 밤까지 일을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면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건만 어떻게든 일이 마무리되는 것을 경험하다 보니 미루는 것도 습관이 된 듯하여 바꾸려고 애를 썼다.    


 최근에 일정 관리를 해주는 스마트 폰 앱을 쓰면서 날짜의 빈칸을 채워 넣을 때마다 뭔가 활기차게 사는 충만감을 느꼈다. 그리고 계획했던 일을 실행해서 체크를 표시할 때마다 희열이 느껴졌다.   

  

 나는 대체로 정해진 루틴으로 생활한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자기 계발과 관련된 동영상을 듣는다. 7시에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7시 30분이면 정해진 도로를 운전하며 거의 정해진 차선으로만 달린다. 월, 수요일에는 꼭 운동을 하고, 주로 화, 목, 금요일 중에 공부 모임 약속을 잡고 참여한다. 그리고 저녁 11시 30분에는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     

 

 올해 학년 부장을 맡으면서 스스로 ‘작은 학교의 교장’이라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판단하면서 넓고 깊게 생각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서 학년 교육과정이든, 교육 활동이든, 행사들을 미리 계획하고 면밀하게 살펴보며 진행하고자 애썼다. 올해 체험학습과 체육대회, 학년 교육과정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학년협의회를 통해 섬세하고 세세하게 전달하며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요즘 들어 잠자리에 들 때 뭔가 경직되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나는 이유를 찾았다. 저번 주 금요일 체육대회 때 들떠있는 1학년 아이들에게 엄청난 잔소리 랩을 해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담임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으쌰’ 하며 즐거워야 하는데, 학년 부장에게 책잡힐까 아이들을 단속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차!’하는 생각을 했다.     


 잘하고자 하는 계획과 행동이 지나쳐 강박이 되었다. 몇 번을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일의 진행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단단한 ‘틀’을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틀’을 보여주며 맞추라고 한 것 같다.      


 터널 비전(tunnel vision)!

 어두운 터널을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면 터널의 출구만 동그랗게 밝게 보이고 주변은 온통 깜깜 해지는 현상. 한 가지 문제나 원인에 집착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못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내가 이 상태에 빠져 있다. 오로지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것에 집중과 몰입을 하고 있다.


 내가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실패가 두려워서였다. 뭔가를 잘못하여 사람들의 지적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데만 집착하여 두루 살펴볼 여유와 다양한 시도를 상상할 유연성을 잃었다.    

  

  나의 충동들은 어디로 갔을까.

 학창 시절 나는 충동적으로 친구들과 야간 자율학습에서 도망쳐 나와 남포동 밤거리를 다녔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영도다리를 건너며 고민을 나누지 않았던가. 공부 시간은 줄었을지언정 인생에서 더 소중한 추억을 얻었다. 남편과의 결혼도 충동이 그 시작이었다. 퇴근하는 그를 붙잡고 충동적으로 ‘맥주 한 잔 하자’고 한 것에서부터였다. 학생들과 수업에서도 아름다운 날씨에 충동이 발동하여 야외 수업을 진행하고 충동적으로 축제 무대에 올라가 막춤도 추며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몇 년 동안 나에게 충동적인 생활이 없었던 것이 문제다. 계획되고 준비된 삶에 충동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니... 이건 인간답지 않다.      


충동적으로 동네 언니들께 ‘번개’라도 제안할까 싶었는데 다들 바쁠까 싶어 머뭇거려진다.

에잇! 충동구매라도 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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