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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n 05. 2022

야호!

“야아아아 호!”     


 산 정상에서 외칠 법한 구호를 누군가가 힘을 주어 외친다. 어김없이 오늘도 누군가 절규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 ‘야호’를 외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야호 아저씨’가 등장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소리 크기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대에  외쳤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 달 넘게 산 정상에서 소리가 계속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야호’ 소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어 동네 주민들을 괴롭혔다.     

 가장 황당하고 괴로운 시간은 새벽 3~4시 경이다. 야호 아저씨는 특별히 우리 아파트 뒤쪽에 가까이에 와서 엄청난 소리를 지르고 냅다 달려가 사람들의 잠을 깨웠다. 이런 날이 잦아지자 사람들은 경찰서에 민원을 넣고 관리 사무실에서는 대책을 세우며 고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마다 ‘새벽마다 힘드시죠?’를 서로에게 물을 정도였다. 하지만 누군지 파악도 되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반복되자 코로나로 지친 일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화는 분노로 변했다. 우리 가족 또한 잠을 설치게 되니 피곤함과 짜증스러움이 더해져 일상이 괴로웠다.


 일상 회복이 되어가는 요즘 ‘야호 아저씨’의 ‘야호’ 소리는 매우 작아졌다. 우리 가족의 예측으로는 가족들이 그를 집에 가두고 있거나 아니면 인근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는 중으로 생각한다. 거의 쉰 목소리로 ‘야호’를 외치지만 실내에서 외치기에 거의 개미 소리 수준이다.

 그러나 여전히 ‘야호 아저씨’의 고함은 절규에 가깝다. 그의 소리는 듣는 이에게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전달한다. 다른 말 없이 야호를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외치며 무한 반복하는 목소리는 거실 TV 소리보다도 작음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게 만든다.

 (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야호 아저씨는 간격을 두고 작은 ‘야호’를 목소리가 쉬도록 외쳐대고 있다. )     


 우리 학교에는 입학 후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은 녀석이 있다. 학교에서 이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의사소통은 아이의 표정으로 보고 짐작할 뿐이다. 작고 여린 모습으로 움직임도 거의 없지만 아이는 수업을 듣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가정에서는 이야기를 조금 한다는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입을 다문 지 꽤 오래되었다며 어머님은 그저 잘 보살펴주시라고 부탁한다. 아이는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짝을 지어줄 때도, 모둠 활동을 할 때도 아이를 돌봐주거나 혹은 건드리지 않는 아이와 짝이 되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아이가 내는 ‘무음’의 소리는 너무도 강력해서 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나는 어떤 소리 안에 살고 있을까.      


 주말 아침, 서로 잘 잤느냐 인사를 묻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침을 준비한다. 커피를 끓이고 따르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남편이 식물에게 물을 주며 잎을 닦아 주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주말인데 일찍 깨웠다며 투정을 부리지만 음악을 들으며 각자 할 일을 하는 소리를 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버겁고 부담스러운 면이 없진 않지만 내 세계에는 학생들의 재잘거림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러고 보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소리 들은 대체로 희망차고, 아름답고, 의욕적인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듣고 싶은 소리 혹은 편향적으로 소리를 골라서 듣고 집중하여 희로애락의 감정을 펼쳤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소리는 무엇을 담아냈던가.

야호와 무음 사이에 숨겨진 깊은 감정을 만나며 내 입으로 전한 소리에 어떤 감정을 실어 보냈는지 생각해 본다.  나의 소리는 나와 타인의 세계를 살리며 힘을 주고 톡톡 건드리는가 야호 소리를 들으며 돌아본다. 

어쩌면 야호 아저씨도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소리  
                     -한상숙

삶의 소리가 나를 깨운다.
의식을 깨우고 머리를 맑게하고 숨을 쉬게한다.
베란다를 통해 들려오는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
바람이 커튼을 펄럭이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수돗물 소리
등교하면서 햇살에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해맑은 소리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소리
누군가가 버튼을 눌렀을 전화벨소리
모든 소리는 살아 숨쉬는 생의 소리이다.
움직임 이는 이동의 소리이다.
아무도 제 자리에서는 숨을 쉬지 않는다.
계절에 빛 바랜 길가의 들풀도
어제보다 더 깊은 침묵으로 조용히 숨을 쉬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기적인 마음에 한때 시끄럽다고
짜증내던 그 시간들은 가장 활발하게
내 주위에 생명이 모여있었던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생은 좀더 기쁨으로 충만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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