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향기 Jun 19. 2022

칼퇴와 호구

  계속 칼퇴를 못하고 있다. 항상 출근할 때는 비장하게 칼퇴를 결심하건만 야속하게도 퇴근 시간까지 일을 끝내지 못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 결국은 한참을 넘긴다. 항상 칼퇴를 하기 위해 초근 신청도 안 하고, 그래서 수당도 못 받고,  5층 꼭대기 사무실에서 혼자 남아 일하다 가니 사람들이 나의 늦은 귀가를 알리 없다. 모두 퇴근한 줄 알고 소등을 해버린 컴컴한 학교 복도를 내려올 때는 ‘학교 괴담’의 공포를 체험하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어떨 때는 서럽다.


 퇴근이 늦는 이유는 다양한 ‘돌발성’ 업무 때문이다. 수업이나 교육청의 업무들은 대체로 짐작하고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라 일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생들은 살아 움직이는 엄청난 에너지들이기에 매우 자주 ‘긴급’하고 ‘돌발’적인 일이 발생한다.  

   

  긴급하고 돌발적인 것들의 예를 들자면, 인근 주민들의 제보로 흡연 학생이 발생하면 적발과 지도를 해야 하고, 자신의 키를 확인하고 싶어 천장에 달린 시설물을 망가뜨리는 아이들에 대한 지도 및 손괴 배상 업무 처리, 때로는 위기 학생 발생으로 긴급 협의회에 참여하고, 간혹 경찰로부터 요청받은 CCTV 학생 식별을 위해 시간을 소요하기도 한다.  최고의 난이도는 학폭과 관련된 일이 발생할 때이다. 학폭 사건 발생은 신중하고 공정하게 진행해야 하므로 신경 쓸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업무 처리를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후 시작한다. 그나마 돌발성이 급격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일을 연장하고 싶지 않은 까닭에 대부분은 다이어리에 목록을 써 놓고 진행하지만 완수율은 늘 50% 이하다.      

  이번 주는 특히 내 마음이 너무 바빴다. 공개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바쁘니 창의적인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짬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서 허덕이고 있었다.     


“부장님은 너무 섬세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서 요새 아이들하고는 안 맞을 수 있어요!”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얼굴 그림을 그리며 놀린다고 찾아온 여학생과 상담을 마치고 남자아이들을 혼낼 요량으로 자리를 일어서는데 같은 교무실에 있는 연장자인 동료가 말을 던진다. 의도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아이들 일로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하는 말인 듯싶었다.      

“때로는 봐도 못 본 척해야 사춘기 아이들도 숨을 좀 쉴 수 있다고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맘이 상해 한 마디 쏘아 주고 싶은데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 붉히기 싫다.     

“네. 그런가요?.”     


그 말이 머릿속에 빙빙 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이 시작된다.  

   

'교사가 내 적성에 맞는 걸까? '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 맞아?'

'25년째 이 고민하는 거야?'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 거야?'

'뭣이 중한디? 적당히 해야지 이러다 건강 해치면 어쩌려구. 누가 알아준다고? '

   

  인문학 공부의 도반들은 훌륭한, 유능한, 박학다식한,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내’가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주 조언한다. 훌륭한, 유능한, 박학다식한, 잘 가르치는 것에 대해 스스로가 상()을 만들어 규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분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나누면 그것에 얽매이게 되니 경계하라는 뜻이다.


  도덕 교사인 나는 교과 특성상 아이들에게 ‘옳음’을  가르친다. 그런데 ‘옳음’은 때때로 선생님과 부모님의 필요, 학교의 필요, 사회의 필요에 의한 통제 수단으로 변질되어 작동한다. 내가 미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시키는 대로 사는 것에 익숙했기에 그 점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더불어 아이들의 ‘LIKE’를 들여다보는 것을 자주 놓치는데 그건 나의 ‘LIKE’를 찾는 것에도 미숙해서 그렇다.

  

 나는 아이들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어제 누구랑 놀았는지, 왜 속 상한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해주기를 기다리며, 애정 어린 조언을 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특성을 지닌 데다가 그것이 내가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교사로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렇게 지난 세월 동안 아이들의 이야기는 글쓰기의 소재가 되었고 내 감정을 섬세하게 만들어 온 동력이다.  때로는 이런 점 때문에 호구가 되기도 한다. 다정하고 친절하기만 하면 사춘기 아이들은 금방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호함을 함께 겸비해야 한다. 단호함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호통도 치고 따끔하게 뼈아픈 충고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여리고 우유부단함 때문에 주저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건강한 관계를 위해 연습을 하고 가끔 실행도 한다.

     

칼퇴를 못하는 것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마음이 맞닿아 ‘서로’에게 귀한 ‘사이’로 이어지는 아이를 찾기 위해 이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냥 이게 '내 모습'이다.  그냥 그런 방식이 .

    

다만 워라밸을 위해 칼퇴는 해야겠기에 나에게 조언한 연장자 교사에게 업무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며 일을 나누었다. 호구로 보이고 싶지 않은 뒤끝 작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야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