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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l 10. 2022

뭣이 중한디?

7월에 접어들면서 꿈끼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꿈끼 주간이란 아이들의 진로와 적성을 찾기 위한 주간으로 학교가 창의적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기간을 말한다. 꿈끼 주간은 학기 말 취약 시기에 진행되는 곳이 많다. 대부분 2차 지필고사를 마치고 각 교과의 교육과정 운영이 마무리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또 학생들이 시험 이후 몸과 마음이 해이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7월에 운영되는 꿈끼 주간 운영 프로그램을 2월부터 기획했었는데 초안과 달리 막상 일을 진행해 보니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발목을 잡아 애를 먹었다.  또 우리 학년만 생각하고 기획하면 되는데 오지랖 넓게 다른 학년도 함께 진행하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본의 아니게 실무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일은 산더미 같이 커졌다.     


 의심도 많고 책임감도 강한 나는 6월부터 슬슬 불안해졌다. 도와줄 일손은 많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의 진행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학년 부장님들이 함께 사업을 기획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니 담당자와 통화하고, 행정 실무 담당은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하겠노라’라고 입을 잘못 놀린 대가였다. 아니나 다를까 6월부터 내 사무실의 전화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수업을 다녀오면 여기저기 벌려 놓은 일들 때문에 부재중 전화와 업무용 메신저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우짜노. 너무 오버했다!      


 가장 짜증 나 후회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학년별 미니 체육 대회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힘들었을 아이들이 서로 친했으면 하는 바람에 이벤트 회사를 섭외해 팀빌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로 했는데 행정실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너무 까다로웠다. 지역에 있는 업체여야 하고, 상해 보험을 들어야 하고, 안전 요원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등등의 서류를, 학교에서 원하는 양식에 맞추어 제출하라는 것이다. 서류를 제출하면 꼭 한 가지씩 문제가 있다며 보강하여 다시 제출! 또 제출!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내 메일과 전화기를 이 서류 준비로 뜨거웠다. 실무자들끼리 서로 통화하면 되는데 내가 품의 등 행정문서를 처리해야 하니 계속 양쪽 필요한 이야기를 듣고 조율하며 일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벤트 업체 진행자와 실무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다음 주에 있을 금융 인성 교육 키트가 무려 630개가 도착하여 행정실 복도를 막고 있다며 빨리 치워달라는 메시지를 받으니 대상도 분명치 않는 화가 끓어올랐다.      


 ‘그래! 내가 하고 만다. 한다고!’ 


   아이들을 불러 학년별로 분류하여 각 교무실로 보내고, 1학년은 반별로 다시 분류하여 정리하였더니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예쁜 주황색 블라우스는 땀으로 인해 붉은색으로 변했고 내 얼굴은 열로 벌게져 파운데이션은 이리저리 밀려 둥둥 떠다니고, 땀에 머리는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 3학년 부장님이 다음부터는 사업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애쓰는 나를 보며 위로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그래! 내 능력 밖의 일을 도전한 거야. 이건 아니야!’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한껏 무거워진 어깨를 끌고 집으로 왔다.      


 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이런저런 속상함에 하소연을 했다. 묵묵히 듣더니 나에게 무심하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니까 도전한 거야! 작년에 비담임이고 부장이 아니었을 땐 하고 싶어도 못해서 아쉬워했잖아. 기획회의나 학년회의 참석해서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를 이끌어 내고 착착 진행하고 있잖아. 작년하고 지금 비교해 봐. 뭐가 더 나아?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해.”     


하소연을 들어주면 되는데, 남편이 나에게 조언을 하다니!  싸워야 하나? 학교 일로 심기 불편해진 마음이 남편에게 공격 태세를 갖추려고 준비하다 마지막 말이 뇌리에 박힌다.


 맞다. 나는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여 실행하면서 나와 아이들, 학교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재밌어요. ’ ‘좋아요’ 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성공한 느낌이 들어 교사로서 자존감을 확인한다. 내가 꿈꾸고 상상했던 것들을 실천하고 확장을 원했으면서, 진행 과정에서 처음이라 서투르고 돌발 상황에 당황해 ‘다음부터는 안 하려는 다짐'을 한 것이다. 


 나를 성장시키는 본질을 잊어버리고 당장 업무에 매몰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뭔가 해보려고 하면 수업 외에 업무량이 많긴 하다. 허나 어쩌랴. 잘 모르는 것이라 찾아보고 알아보는 데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을. 모든 일을 한 번에 영리하게 처리하는 속도를 가지려면 그 또한 경험을 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나를 달래 본다.     


그래! 내년에는 올해보다 그 빌어먹을 행정 업무 처리는 훨씬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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