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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l 24. 2022

낙제 엄마

고1 아들이 성적표를 받아왔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영수 학원을 다니고 나름은 노력한 줄 알았는데 결과를 보니 영 아니다. 둘째 녀석의 성적표를 보니 나는 낙제 수준의 엄마라는 자책을 하게 된다. 아이의 성적표는 곧 엄마의 성적표다. 큰 애 고등학교를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들 모임을 가면 그런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다. 부인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성적 좋은 아이의 엄마 어깨가 으쓱하는 게 부러웠다.


 8년 동안 혁신학교에 근무했고 혁신업무를 주로 담당해 오면서 성적이 아닌 배움의 중요성을 깊이 공감한 나였다. 또한 공동 육아를 하며 조합 생활을 했고 이사장 활동까지 하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 학부모 교육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의 성적표 앞에서 그간 나의 철학과 활동들이 몹시도 쭈글 해진다.


  내가 부모로서 가르쳐야 할 것을 ‘결정적 시기’에 아이에게 해주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때가 종종 있다. 공부할 수 있도록 잡았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밤 7시가 넘도록 동네에서 놀다가 온 것을 건강하다고만 여겼다. 맞벌이 부부였지만 잘 놀고, 잘 자며, 성격도 모나지 않은 아이를 보며 언젠가는 알아서 잘하리라 순진하게 믿었다. 어린 시절 나도 실컷 놀다가 정신 차려 공부했으니, 남편도 그러했으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근성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 내가 순진했다.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는 유형이 아닌 이상, 스스로 공부 방법을 찾고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은 요즘 시대에 어불성설이다.


아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국, 영, 수 학원을 그만 다니고, 태권도와 드럼 학원을 다니겠노라 했다. 학원을 다니나, 혼자 공부하나 성적은 비슷할 것이니 더 떨어질 거라 걱정 말라고 위로도 한다. 열심히 공부하며 월등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로 승부를 볼 자신은 없다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신이 잘하는 운동으로 노력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대학은 포기한 거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고1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가. 조금 못해도 마음을 잡아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그나마 있다. 나는 대학의 중요성을, 그 길밖에 없음을 아이에게 절절히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대학 포기한 거 아니야. 하지만 안 되면 다른 길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거야.’    

 

그동안 내가 가진 오만함을 아이의 말에서 깨닫는다. 입시와 성적의 틀을 비난했지만 동일한 프레임이 내 안에  존재하고 철저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혁신학교에서 배움을 논하고 공동체의 상생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했지만, 대학을 통한 계층 상승의 욕구는 무시할 수 없었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임을 두려워하고 있던 것이다.      


17살이나 된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자신이 세운 뜻대로 하도록 격려하고 믿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내가 오은영 박사였으면 좋겠다. 명쾌하게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며 괜찮다고 아이에게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의 걱정보다 내 걱정이 앞선다.

아! 나의 방학 기간 동안 아이와 함께 잘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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