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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Sep 27. 2022

병원에서

추석 연휴 때 부어올랐던 얼굴 속 염증은 고름으로 이어졌다. 인근 병원이 침샘염으로 오진하여 3일 동안 엉뚱한 약을 먹었고, 결국은 종합병원에 가게 되었다. 염증이 입과 볼 애매한 위치에 있어 이비인후과로 치과로, 피부과로 각각 검사를 받다가 최종적으로는 성형외과에서 진료하게 되었다. 원인이 불명확하니 서로 이리저리 보다가 저쪽으로, 이쪽으로 관련 진료과에 보내더니 협진을 진행하기로 했다.     

 얼굴 염증은 절개 및 배농 해야 하므로 수술이 불가피했다. 얼굴 안면신경이나 이하선 침샘 근육과 염증이 엉켜있으며 위험할 수 있으니 전신마취를 하겠다고 해서 수술 경험이 없는 나는 걱정이 되었다. 또 생각보다 길어지는 병가 때문에 직장에 지장을 주는 것 같은 미안함도 마음을 짓눌렀다. 미안할 일이 아니며 배려받아야 할 일이라 마음을 고쳐먹고 관리자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병가를 신청했다.      

 입원 수속을 한 후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긴 줄이었던 검사 행렬은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콧속 깊이 찌르는 순간적인 아찔한 아픔은 그대로였다.      

  병원에 도착하고 환자복을 입고 CT를 찍었다. 조영제를 몸에 넣으니 온몸이 순간적으로 화끈했다. 염증의 정도와 위치를 정밀하게 살펴보기 위해 이리저리 얼굴에 맞춰 영상을 찍는다.

영상 결과를 의사와 확인했는데 빛이 반짝반짝하는 것이 보였다. 예전에 썩은 이에 골드 크라운을 한 것이 그렇게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늘 얼굴에 빛이 났으면 했는데 시커먼 영상 속에 빛이 환한 내 모습을 보니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이 피식 나왔다.


  침대에 누워있자니 좀이 쑤셔 링거를 주렁 달고 복도로 나선다. 나뿐 아니라 환자들이 이리저리 같은 마음으로 오가는 듯싶다. 그중 얼굴이 심하게 퉁퉁 부은 아기를 만났다. 아기 엄마는 아기를 안고 노래를 부르지만 고통으로 계속 칭얼대는 아기가 너무 안쓰럽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보는 사람마다 묻고 한 마디씩 할 것 같아서이다. 아이의 울음은 밤새 이어진다. 큰소리도 내지 못하는 아기가 고양이처럼 아우성치는 소리는 듣는 건만으로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복도에서 아기를 볼 때마다 나는 반갑게 ‘안녕!’하고 반갑게 아는 척만 한다.     

  휴게실에 한 중년 여성은 화가 나 큰소리로 통화 중이다. 자주 그런 모습이 목격된다. 몸이 아파 입원했는데 일하러 가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몰라주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다 결국은 화를 내고 있는 게 다 들린다. 자신을 위로해주는 사람을 찾아 계속 전화를 돌리며 통화를 한다.


 코를 다쳐 붕대를 감고 있는 고등학생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고 있다. 밍밍한 병원 식사가 마음에 안 들겠지... 직업병이 도져서 잔소리를 할까 싶어 얼른 돌아선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두툼한 점퍼를 걸쳐 입고 자주 밖으로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간식을 한 아름 사 오는 아이를 보며 우리 아이를 보는 듯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매우 사무적이다. 인간미라곤 보이지 않는다. 시간에 맞춰 약을 주고 링거를 바꿔주고 수술 부위를 만져보며 가장 극단적인 위험 상황을 가정해 매우 간단하게 전달한다. 상대의 두려움과 감정 변화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가장 효율적인 태도를 선택한 것이리라.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 엄청난 친절을 만나며 따뜻한 대화가 그리웠다.


 수술 당일.

전신마취에 대한 안내를 듣고 수술복을 갈아입고 휠체어로 이동한다. 수술실 대기실에서 3명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뒤쪽 침대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며 중얼거린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를 하니 절박함이 절절하다. 간호사들은 환자 이름을 호명하며 확인하고 수술 환부와 병명을 재차 확인하며 실수를 줄이려고 애쓴다. 할머니는 기도 중간중간에 간호사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다시 몸을 흔든다. 수술의 긴장과 두려움을 잊으려 기도를 하지만 실상 모든 신경은 의료진에게 쏠려있다. 거기에 있는 그 누구도 할머니에게 ‘괜찮다, 걱정 마세요!’란 말을 하지 않는다. 위로와 공감의 언어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공간이 수술실인가 보다.


 수술이 끝나고 내 얼굴은 UFC에서 흠씬 두들겨 맞은 선수 마냥 붓기와 멍으로 엉망이 되었다. 고름을 짜내느라 얼굴에는 손가락 자국의 멍이 남아 있었다. 그간 외모를 가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오랜 노력은 한순간에 허사가 된 기분이다.      


 일상의 시간보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병실에서의 시간은 한없이 길고 느리다. 통증까지 이어지면 밤이 그리 길 수 없다.

그러나 수술이나 치료 시간은 순삭이다. 어떤 순간에는 시간을 도둑맞는다.


 병원에 누워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아! 이제 내리막길을 잘 준비해야 하는구나.

 의욕적으로 앞서 멀리 나가 있는 마음을 내 몸 옆으로 데리고 와야겠구나.

 나는 낙타의 삶을 살고 있구나.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병원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을 관찰하며 내 마음도 들여다본다.  

 나는 두렵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런 경험이 내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려놓기가 포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그것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껏 늙어버린 것 같은 체력의 한계를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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