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회전목마
인생이 오르락내리락 하더라도 회전목마의 조명은 늘 당신을 비춘다.
병원에서 퇴원 후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전과 같지 않다.
갑작스러운 폐경을 맞이하면서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늙어버린 것 같았다.
시대 변화 적응과 업무에 있어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자기 계발에 고민하던 찰나에 체력까지 고갈되는 상황에 직면하니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더불어 노화나 죽음, 인생과 같이 막연하게 먼 이야기처럼 생각되던 것이 눈앞의 일인 듯 느껴져 생각이 복잡해졌다.
아직까지 손이 가야 하는 아이들, 연로하신 부모님, 아파트 담보대출, 연금 등을 생각하며 경제활동을 더 지속해야 하는 현실적인 수 백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맴돌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여성성’과 ‘젊음’이 사라졌다는 심리적 ‘상실감’이었다. 나는 허우적거리며 혼란을 겪고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젊음을 빼앗긴 소피가 등장한다. 모자가게에서 일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던 그녀는, 저주로 인해 할머니가 되자 마법을 풀기 위해 하울을 찾아 나선다.
그녀는 노인이 되고 나서 오히려 용감한 사람이 되었다. 모험을 떠나고, 사람들을 품고 베풀며, 도움을 주며 긴 여정의 주인공이 된다.
그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시며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노인의 좋은 점은 잃을 것이 적다는 거지.”
최근의 일을 겪고 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지키는 지혜’에 대해 생각했다. 체력과 마음의 한계에 부딪힌 지금, 무엇을 어떻게 지키며 유지할까를 말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버려야 할 것들, 너무 욕심내서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중이다.
꼭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을 알고 지키려 애를 써야겠지만 또한 언제든지 잃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문어발처럼 이것저것 벌려 놓았던 모임과 연수 등을 살펴보며 정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기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 밥 먹을 때 오래 씹기, 8000보 걷기, 빈둥거리는 시간 갖기, 조급해하지 말기,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하기, 완벽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등등.
그렇게 나는 스스로 상실감에 허덕이지 않도록 흔들림을 최소화하기로 마음 먹고 진행 중이다.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그것은 죄악이야.”
<노인과 바다>에서 소설 속 주인공인 어부는 망망대해 지친 자신에게 말한다. 소설 속에서는 며칠 동안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상어와 맞서 싸우면서 비쩍 여윈 어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보여준다. 귀항 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소명에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내려놓으며 잃는 과정은 동시에 집중과 몰입해야 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과정인지 모른다. 나이 듦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잘 살고, 행복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은연중에 ‘노화’, ‘노인’에 대해 퇴행, 무기력, 소극적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마음속에 거부감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을 준비하면서 남은 생애가 행복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이다. 세월의 흔적에 맞게 변화해 가는 내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수용해 인생의 성장기이며 완숙기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