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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n 10. 2024

살아 있는 가발

정훈은 유교수를 볼 때 다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교수 주위에는 항상 웃음을 띤 사람들이 호감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매너 있는 행동과 박식함, 유머를 갖춘 강의로 인기가 높았고, 더구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풍성하고 흰머리 하나 없는  손질 잘 된 헤어스타일 덕분에 동안으로 학부생뿐만 아니라 교내에서 그는 유명 인사였다.


 "정훈이 여기서 뭐 하는가?"

넋 놓고 유교수를 보고 있던 정훈은 그의 인사에 정신을 차렸다.


" 교수님을 보고 있었지요. 어떻게 하면 교수님처럼 될까 하고 생각하다가 깜빡 인사하는 타이밍을 놓쳤네요.!"


정훈은 늘 솔직했다. 미사여구로 남의 환심을 사는 것은 절대 못하는 성격이고, 마음을 숨기는 것은 더욱더 못하니 있는 그대로 말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자네는 정말 내 아들하고 닮은 점이 많아.  내 아들도 늘 생각을 숨기지 않았지."


정훈은 유교수와 대화를 여기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겸연쩍고 숙연한 분위기로 인해 불편해지기 때문이었다.


"교수님. 저는 학과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강의하러 생물관 쪽으로 가시는 길이시죠?"


유교수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정훈을 보며 미소를 짓고 먼저 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정훈은 알겠다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사무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훈은 유교수가 요즘 부쩍 자신을 보며 아들 이야기로 연결 짓는다는 생각이 들어 친근감이 들다가도 조심스러웠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후 유교수의 외로움을  알고 있는 정훈은 그가 아픔을 꿋꿋하게 잘 헤쳐가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아들을 투영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이런 감정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은 지겹다. 여자 친구 눈치를 살피며 어떤 감정인지 늘 노심초사하는 것도 힘들 지경인데 교수님 눈치까지 살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정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유교수의 아들 이야기에 무 자르듯 말을 끊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그가 아무리 동안이라도 50 후반의 아버지 세대가 누리고 싶어 하는 권위와 위계가 있는데 '을' 관계인 조교의 행동으로는 좀 너무했나 싶어 아부거리를 찾는다. 마침 키피숍이 보였다. 손흥민이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 잔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정훈을 보면 아들 생각이 절로 났다. 다정했던 아이. 병으로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날, 아버지를 위로하며 함께 잘 살아보자며 다독이던 녀석이었다.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간 아들의 주검 앞에서 몸을 흔들고, 얼굴을 비벼대며 소리쳤지만 반응 없이 누워만 있던 녀석이 유교수 온몸에 새겨져 있다.

 유교수는 자신의 가발을 쓰다듬었다. 가발은 유교수의 마음을 이해하듯 그의 손길에 반응하며 온기를 보냈다. 가발은 유교수의 손과 깍지를 끼며 그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러더니 그의 가발은 축 늘어져 유교수의 눈을 덮기 시작했다. 물에 흠뻑 젖은 솜처럼 점점 무겁게 짓누르자 유교수는 잠시 휘청거렸다.


"교수님"

정훈이가 유교수를 부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필요하신 것 같아 사 왔다며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어? 교수님! 땀 흘리셨어요? 머리가 너무 많이 젖어서 쳐졌는데요?"


유교수는 얼른 머리를 다시 매만졌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가발은 생기를 찾았다.


"저 먹으려고 갔다가 통신사에서 공짜 쿠폰 줬던 것이 있어 한잔 더 샀어요. 오늘도 파이팅 하십시오"


정훈의 뛰어가는 모습을 유교수는 지켜보며 가발을 쓰다듬었다.


"너도 저 녀석이 마음에 들지?"


그는 다시 동안의 모습을 되찾으며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의를 하는 내내 정훈이를 떠올리며 마음이 흡족했다. 유교수 머리 위에 놓여있는 감쪽같은 가발도 흡족한 마음을 느끼는지 어느 새 정훈의 머리 모양과 비슷하게 고쳐 앉았다.


"교수님! 혹시 조교님하고 친인척이신가요?"


강의를 마치고 여학생 한 명이 묻는다.  그녀의 주위에 여러 명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답을 기다리고 있다.


"제가 쭉 지켜봤는데 너무 닮으신 것 같아요. 3월에는 몰랐는데요. 요즘에 헤어 스타일이며 눈웃음이며 너무 닮은 것 같아 우리끼리 내기했다니까요? 성이 다르고 젊으시니까 아버지는 아니신 것 같고... 사촌 동생? 배다른..  헉! 죄송해요."


여학생의 선 넘은 추리에 옆의 학생이 허리를 찌른다.


"아닐세. 허허. 내가 아끼는 사람일 뿐!"


유교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끼는 조교와 닮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들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수 연구실에는 아들의 조기 축구회 유니폼이 의자에 걸쳐져 있다. 치우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유니폼은 버리지 못했다. 아들은 축구를 좋아했다. 하루 종일 연구만 하다가는 늙기 십상이라며 찾은 운동이 축구였다.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고 격렬하게 공을 몰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골때리는 그녀"라는 예능이 나왔을 때 아들은 좋아하던 여자 연예인이 축구를 뛴다며 당장 팬클럽에 가입했다. 유교수는 아들 덕에 여자 축구 예능 팬이 되어 버렸다. tv를 함께 보면서 해설위원과 중계 아나운서가 되어 만담을 이어가고 맥주를 마시며 마무리를 하는 것이 일상의 낙이었다.  밀려오는 그리움이 유교수를 휘감았다.


  똑똑


정훈이가 들어왔다. 오늘 학과장과 회의가 있으니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유교수는 뒤돌아가는 정훈이를 불렀다.


"정훈아! 골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 혹시 아나?"


"그럼요! 교수님. 저 광팬이예요. 여자 친구가 여자 축구 동호회 회원이라 그거 꼭 시청해야 한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어요. 그건 왜요? 혹시 강의자료로 필요하신가요?"


"그렇군. 시간 되는 날짜 알려주게.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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