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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n 24. 2024

유교수의 연구실

유교수의 연구실을 둘러보며 정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듯해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특히 진열장에 가득 놓인 가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저곳 연구실을 걸을 때마다 자신을 향해 가발들이 움직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연구실은 근사하고 쾌적해 근무조건은 아주 좋다고 생각했지만 언짢은 기분은 연구 조교 일을 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왈왈!     

검은 털이 뒤덮인 강아지가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어이구! 이 놈! 순한 놈이니까 겁먹지 말게!”     


품종을 알 수 없는 의문의 강아지.

정훈은 희한하게 생긴 강아지라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 갔다.      


“교수님! 이 개 털이 왜 이런가요? 대가리 쪽 털만 검고 긴데... 사람 머리카락 같이 생겼네요! 품종이 뭐예요?”     


정훈은 최근에 본 영화가 떠올랐다. 괴짜 천재 과학자가 죽은 여인의 태아를 꺼내 뇌를 이식해 살려낸 이야기. 거기서 정훈은 과학자가 만든 괴상한 애완동물들이 이 녀석을 보니 떠올랐다. 돼지머리에 오리 몸통을 가진 생명체가 마당에서 뒤뚱거리는 장면을 보면서 여자 친구에게 생명공학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연구 윤리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등의 이야기를 쏟아 냈었다.      


“아들과 내가 살아있는 가발을 만들어 보려고 했네. 떨어진 머리카락이라도 모근만 살아 있다면 어떠한 생명체에 결합되어 생장 가능하도록 말일세. 녀석에게 붙어있는 이 가발은 분리할 수도 있어. 그러면 가발은 생장을 멈추고 움츠러든다네. 보여주겠네”     


“헐!”


강아지를 붙잡고 머리에 붙어있는 가발을 떼어내려 하자 강아지는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다. 가발을 떼어내자 강아지는 겁에 질린 듯 도망쳤다.      


“자 보게!”


유교수는 가발을 보여주었다. 가발은 뜨거운 여름날 잎이 녹아버린 식물처럼 축 늘어졌다.      

정훈은 가발을 만지는 것이 두려웠다.

유교수의 연구물은 괴기한 생명체가 아닐까?     


“이리로 와 보게!”     


유교수는 연구실 제일 안쪽 깊은 방으로 정훈이를 데리고 갔다. 정훈은 피라미드 회사가 떠올랐다. 정훈이의 짐을 모조리 빼앗고, 휴대폰마저도 강제로 압수하더니 건물 제일 깊은 곳으로 데려갔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쩌지?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수만 가지 생각이 정훈의 머릿속을 채웠다. 복잡하고 두려운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며 유교수를 의지하고 따라 들어가는 자신이 문득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교수가 안내한 공간에는 특별한 장식장이 있었다. 마치 귀중한 예술품을 관리하듯이 커다랗고 깨끗했다.           

“여기는 내가 특별 관리하는 곳이야.”          


정훈은 차를 운전해 돌아오면서 자신이 섣부른 판단을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온화하고 멋진 모습만 보인 유교수의 은밀하면서도 괴기스러운 이면을 본 걸 후회하고 있었다.      


“이제 오냐?”      


엄마가 정훈을 맞이한다.     

 

“니 형 방에 저녁 좀 넣어줘라! 하루 종일 지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꼼짝없이 뭐 하나 몰라! 또 그 여시 같은 년한테 연락하는 건 아닌지 네가 가서 살짝 물어봐라! 아무래도 요즘 이상해. ”     


“야! 송정호! 밥 먹어!”


하루 종일 형을 보고 끙끙 속앓이 했을 것 같아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지만 정훈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오늘은 하루 내내 찜찜한 일만 가득했다.   



            


유 교수는 정훈이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었다. 아들의 살아있는 머리카락으로 자신이 살았으나 곧 세상을 떠나니 이 생명체를 잘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픈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정훈의 넋 빠진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연구실 아르바이트를 거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고심하여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대상을 골랐는데 안쪽 연구실로 들어오는 정훈은 이미 하얗게 질려있음을 유교수는 보았다. 그래도 정훈은 침착하게 연구실을 둘러보고 예의 있게 인사를 하며 함께 일하는 것을 좀 더 생각해 보고 싶다고 정중히 말했다. 유교수는 마음 졸이긴 해도 그런 정훈의 태도가 좋았다.

     

“너도 살짝 기대했지? 그 녀석이 여기까지 와서 둘러보는 모습이 말이야. 모처럼 흥분하더구나!”     


유교수는 가발을 벗어 빗질을 하며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정훈이가 감탄한 장식장에 걸어 두었다. 온도와 습도를 점검하며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졌다.      

벽에 걸린 거울 속에는 가발을 벗은 유교수가 서 있었다. 모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주름 진 얼굴은 더 푸석해 보였고 그의 머리는 상처로 인해 피딱지와 멍이 가득했다.     


“내가 죽으면 너를 어떡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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