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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l 01. 2024

이중인격

정호는 동생인 정훈이 싫었다.

신중한 성격에 다정하게 엄마와 대화하며 살갑게 구는 정훈이 때문에 자신이 엄마의 마음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쌍둥인데 너는 어째 정훈이하고 다르냐? 일란성은 다 똑같다던데, 쯧쯧!”      


엄마는 정호가 못마땅할 때마다 이 말을 달고 다녔다. 정호는 정훈이와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났다는 게 너무 싫었다. 저주로 느껴졌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멋모르고 다녔다지만 중학교 시절부터는 정훈이와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아 엄마에게 다른 학교로 배정해 달라고 조르고 떼를 썼다. 그러나 정호의 마음과 같이 운은 따라 주지 않았다. 정호는 우울했고 학교생활은 불행했다. 예의 바르고 활발한 정훈은 학교생활이 원만했지만, 정훈이에 대한 열등감으로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욱하는 정호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호는 자신의 열등감을 학업 성적으로 극복하고자 했고, 사람들은 괴팍하게 공부만 잘하는 그를 더욱더 멀리했다.


 중 3이 되었을 무렵 정호는 희영이를 짝사랑했다. 하얀 피부에 옅은 화장을 해 생기가 넘치고 밝게 웃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가슴이 설레고 마구 뛰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뜨거운 열정을 어찌해야 할지 우왕좌왕하였다. 정호는 괜히 희영이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녀의 시선과 관심을 어떻게 끌어야 할지 고민하였다. 밤마다 희영이를 생각하며 자신의 뜨거워진 몸을 느끼며 서로 사랑하고 발전하는 관계가 되기를 상상했다. 정호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사귀자’라고 말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희영아!”


정호가 부르자 희영이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그에게 다가왔다.


“왜? 미래의 나의 가족!”

정호는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렸나 싶어 깜짝 놀랐지만 고백이 쉬울 것 같다는 희열감에 벅차올랐다.


“정훈이가 말해준 거지? 나랑 어제부터 사귀기로 한 거 놀리려고 온 거야?”


희영이의 말을 듣고 정호는 번개를 맞은 듯이 충격에 빠졌다. 동생은 형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뺏기 위해 온 존재임이 확실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희영이 반의 교실 문을 박차며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 정호는 이대로 당하고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늘 묵묵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나쁜 일만 계속되기에.

        

“아드님에 대해 학폭 신고 접수가 되었어요. 피해자 학생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서 온라인상으로 유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 학생에게 익명으로 성희롱 문자가 지속적으로 오고 있는데 경찰이 본사에 요청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시간문제인 것 같아요. 학교에 오셔서 학생부 선생님과 상담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정호의 엄마는 우등생인 자신의 아들이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정호의 접속 기록과 합성물들은 발뺌하기에는 증거가 뚜렷했다. 엄마는 희영의 부모를 찾아가 사과를 거듭했고 제발 학폭으로 가지 않도록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희영의 부모는 정호가 다른 학교로 조용히 전학을 가서 눈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과 진정한 사과 편지를 원했다. 희영의 남친인 정훈 또한 예의 바른 태도로 희영과 부모님에게 형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했기에 희영 부모는 학폭 신고 접수를 철회하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정훈은 희영과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연애를 지속할 수 없었다.

     

정호네 가족은 이사를 결정했다. 전학을 간 이후 정호는 집에서 대화를 거부했다. 자신의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훈 또한 형이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신경 쓰이긴 해도 편했다.

정호는 정훈만을 사랑하는 이 집에서 벗어나고자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했고, 공부를 곧잘 했던 그는 외고에 합격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새 삶을 얻은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정호! 너 성추행으로 학폭 갈 뻔했다던데?”


4월 어느 날 정호에게 다가온 주미는 다짜고짜 폭탄 발언을 하였다.  학급 친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와 대화를 지켜보았다.

   

“내 친구가 손희영이야. 알지? 손희영?”     


이후 정호는 외고에서 “변태”란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을 받았다. 부정적이고 욱하는 성격을 가진 정호는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는 외고에서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자꾸 고립되어 갔다. 힘들었지만 정훈이가 있는 집으로, 가족 품으로 오는 것은 더욱 싫었기에 ‘변태 새끼’라는 별명을 들으며 참고 견뎠다.

    

정호는 외고에서 우울증이 생겼고 심한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가 생겼다. 그의 머리 군데군데 머리가 빠져 정호의 몰골은 10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죽을 것 같은 분노와 고립감은 그를 더욱더 옭아맸다. 정호는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을 망치게 한 주미를 괴롭히고 싶었다.    주미의 SNS 프로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며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괴롭힐 궁리를 하고 있었다.

 희영이 때처럼 어설프게 하지 않으리라, 정훈이 그 새끼가 자신을 경멸하 듯 바라보는 일은 없게 하리라는 다짐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정호는 활기찬 학생으로 변해 갔다. 움츠리고 소심하게 눌러있던 아이가 아니라 방긋 웃고 놀려도 ‘나, 변태 맞아!’라며 의미심장하게 웃어넘기는 대인배로 평가받았다. 외고 학생들은 정호의 변화에 놀라워했고 처음에는 위선이라 생각해 거부감을 가졌으나 정호의 활발함에 곧 매료당했다.  더 놀라운 일은 정호가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주미와 친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서로 SNS에서도 일상을 공유하고 피드를 주고받는 관계로까지 친해져 주위 사람들은 정호의 너른 품과 인격을 칭찬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정호의 원형 탈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늘 컴퓨터 앞에서 밤새 공부하며 힘들어하면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헤헤거리는 정호를 보면서 말은 안해도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그의 원형 탈모를 안쓰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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