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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ul 22. 2024

그녀와의 만남

“야! 송정호 몰라보겠는데? 너 아주 많이 달라 보여! 좋은 쪽으로 말이야.”     


가발을 쓰고 다니기 시작하고부터 정호의 주위에 사람이 몰렸다. 훈훈한 외모도 그렇지만, 풍부한 금융 지식과 매너 있는 태도는 호감을 주기 충분했다. 3학기를 휴학하고 복학하기를 반복하며 두문불출하던 그였지만, 취업하기로 마음을 다진 후에는 적극적인 취업준비생으로 변했다.      

 후배들은 금융권 취업을 위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정호를 따르며 함께 스터디를 하고 싶어 했다. 그가 원형 탈모로 고생했던 것을 까마득히 잊고, 매력적인 매너를 갖춘 훈남의 모습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정호 또한 집에 틀어박혀 자신을 혐오하던 여학생들의 눈빛을 떠올리면서 복수를 다짐한 지난날과 달리 친절하게 대해주는 여성들의 태도에 당황했다. 여자 후배들이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고 자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터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내면보다 겉모습만 보며 평가하는 여자들이란 존재를 하찮게 평가하면서 자기 취미 생활이 매우 정의롭고 정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들과 sns로 일상을 공유하고 주고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방문 앞에 놓아져 있던 가발이 자신에겐 엄청난 행운이었고, 정호는 이 가발을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한 몸처럼 착 달라붙은 가발은 전혀 티가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가발로 인해 정훈과의 관계는 크게 틀어졌다. 자신의 것이라며 돌려 달라고 했다. 정훈의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보며 정호는 오히려 쾌감을 느꼈다.     


“형! 그건 내 것이 아니야. 교수님이 내게 맡기신 물건이니 돌려줘. 그냥 보통 가발이 아니야”

    

“교수님은 언제 오시니? 엄마가 만나 뵙고 너네 형에게 맞춘 듯 딱 맞으니 구매한다고 하면 안 될까? 형 봐라. 요즘 얼마나 신수가 훤하고 좋으냐? 정훈아 엄마가 부탁하자!”     


엄마가 중간에 끼어들며 정호 편을 들자 정훈은 마지못해 유교수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행운인지 불행인지 유 교수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정호에게 유 교수가 돌아오면 꼭 돌려주어야 한다고 깨끗이 관리하라며 한발 물러섰다.

     

“형, 가발을 쓰면서 이상한 거 못 느끼겠어? 몸이 좀 달라진다던가, 평소와 다른 성향이 나온다던가 말이야. 그 가발 말이야. 사실은...


아니야, 그래도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그러면 나에게 말해 줘야 해”      


“신경 꺼! 아무렇지도 않아. 나에게 잘 어울리는 가발일 뿐이야. 질투하냐? 네가 하고 싶냐?”    

 

정호는 동생의 지나친 간섭과 걱정이 싫었다. 동생의 물건을 함부로 만졌다는 것은 찝찝하고 상식이하의 행동이긴 해도 연락 안 되는 주인의 물건이었기에 죄책감은 한 결 줄었다.      


정호는 여의도 증권맨이 되었다. 그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고 당당히 합격하여 후배들의 워너비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정호는 가발로 인해 행운이 왔다고 여겼고, 애지중지 다뤘다.

그의 가발 벗은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실제 머리카락은 이제 거의 없어진 상태고 반면 가발은 더 풍성해졌다. 동생의 말처럼 보통의 가발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최근 들어 아주 가끔씩 어지럼증을 느끼긴 하는데 일이 많아 그런 것이지 가발 탓을 아닐 것이다. 실제 모습은 골룸이나 가발을 쓰면 훤칠한 사람으로 180도 달라지는 것이 자신도 신기할 따름이다. 정호는 가발을 쓰면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근육이 있는 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찰나에 자신 몸속의 근육들이 툭툭 불거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정호는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증권맨이었다. 학벌과 실력, 외모까지 훈훈한 그는 과거 왕따였던 모습과 비교 안될 만큼 인기를 누렸다.      


  “정호 씨! 소개팅해 보지 않을래? 진짜 예쁜이가 나오는 자리야. 예전에 아이돌 연습생 하다가 데뷔 못한 친구들 이래. 좋은 신랑감 물어서 시집가고 싶은 모양인데, 우리야 결혼정보 회사에서 조건에 맞는 사람 만나면 되는 거고, 소개팅 자리는 적당히 예쁘고 괜찮은 사람 만나는 자리니, 아무 부담 없이 나가서 놀고 와!”   

   

동기의 말에 정호는 귀가 솔깃했다. 연애를 해 본 적도 없는 정호는 연예인 지망생을 만난다니 흥분되기 시작했다. 마지못해 수락하는 듯이 행동했지만 정호는 얼굴이 상기되기 시작했고 그날부터 기대감에 설레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가발을 쓴 머리에서도 미친 듯이 심장이 뛰는 듯이 느껴졌다.      


“송정호 씨?”


그의 눈앞에는 화면에서만 만났던 미모의 여인이 서 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 증권사에 다니신다고 하더라고요? ”


정호는 화려하게 꾸미고 나온 소개팅녀가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눈에 띄는 미모였으나 왠지 모르게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호기심 어리게 보는 시선이 싫지는 않지만 말 끝마다 연습생 시절에 꿈꿨던 화려한 모습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아이돌처럼 여기는 듯한 비현실적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정호는 자신의 마음과 달리 그녀를 친절하게 대하고 있었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가 매우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저 여자가 마음에 들어!”


 정호의 귀에 환청이 들렸다. 환청이라 하기에 정확한 소리가 들렸기에 정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여자가 마음에 든다고! 너도 마음에 든다고 어서 말해! 어서 말하란 말이야”     


정호는 어디선가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두렵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흘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괜찮으세요? 정호 씨?”     


그녀는 몸을 떨고 있는 정호를 가볍게 터치했다.

“음.. 저는.... 저는요. 당신이, 그러니까 당신이”  

   

“네? 뭐라고 하는 건가요? 어디 아프세요?”


그녀가 자리를 옮겨 정호 곁으로 부축을 하려는 듯 다가왔다.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정호가 이 말을 하자, 환청은 멈췄다.  그녀는 그를 보며 아리송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정호 옆자리에 앉았다.     


‘잘했어. 송정호! 그렇게 시키는 대로 말하면 되는 거야’

                                 -이미지 출처: DALL-E 3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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