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희는 어렸을 적부터 예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난희는 하얗고 가름하며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몸은 가냘프고 약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커서 ‘연예인‘하면 되겠네라는 말을 듣고 자란 터였다. 초등학교 때는 전교 남학생들의 첫사랑의 대상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난희와 짝을 하고 싶어 했고, 등하교 친구이길 원했다. 난희는 자신이 예쁜 것을 알았고, 외모를 이용할 줄 알았다. 또한 여자 친구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으면서 자칫하다가 외톨이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한 영리한 아이였다. 난희의 엄마는 자식에게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매사에 규칙을 정했고, 모범적이고 예의를 강조했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매무새나 언행은 용서치 않았다. 난희는 긴 머리를 한치도 흐트러짐 없이 높게 묶고 잔머리가 나오지 않도록 에센스를 듬뿍 바르고 다녔다. 어린 시절부터 늘 높게 묶고 다닌 머리 스타일이며 단정한 옷차림은 난희를 옥죄었지만 엄마는 단정미를 보여주어 고급스럽게 보인다고 믿고 있었다. 난희 엄마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아니 전업 주부를 한다는 것이 평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난희 엄마의 친구와 또래 여성들은 거의가 직장을 다니고 있으므로 오히려 난희 엄마는 특별할 지도 모른다. 그녀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힘들면 힘든 대로,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살면서 가족에게 헌신하고 싶어 했다. 난희의 아버지는 훈훈한 외모를 가졌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난희 엄마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깐깐하고 엄격한 부인과 달리 여유롭고 즉흥적이며 폼 잡기를 좋아했다. 금형 관련 쪽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일은 고되긴 해도 고정 수입으로 늙을 때까지 먹고살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진 사내였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남매는 동네에서도 인정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 난희 아버지는 어딜 가나 자식을 대동하며 다니길 좋아했다. 엄마를 닮은 하얀 피부, 호리호리한 몸매, 아빠를 닮은 서글한 이목구비가 조화를 이루어 4식구가 함께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당신과 헤어지고 싶어. 너무 갑갑해!” 난희가 중학생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가출을 했다. 엄마와의 마찰이 심했고 그 불화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벼운 불안증이 있었던 난희 엄마가 시간이 지날수록 집착으로 변해 가족들을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희 아빠는 무책임하게 아이들을 두고 자신만 빠져나갔고 난희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딴 여자와 동거를 했다. 아빠의 이혼요구에 엄마는 끄덕도 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었고, 생활비 이외에 더 바라지 않는다는 상식밖의 태도를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었다. 난희가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빠의 가출 이후부터였다. 그나마 아빠로 인해 숨을 쉴 수 있었는데 혼자 살겠다고 나간 이후 엄마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빠와 난희의 몫이었다. 엄마는 오빠를 아빠의 대타로 여겼는지 극진히 대해주었다. 가장처럼 의지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기에 오빠는 어리고 이기적이었다. 엄마를 속이며 이용할 뿐 책임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난희에게 가혹했다. 말도 안 되는 귀가시간을 정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바른 완벽한 아이가 되기를 요구했다. 난희는 화장을 짙게 하고 늦은 시간 귀가하며 시험을 망치는 등 엄마가 요구하는 반대로 행동하였기에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수업시간에 깨우는 선생에게 욕을 하고 선도위원회에 엄마가 불려 왔을 때 사람들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엄마를 보며 난희는 치를 떨었다.
“아빠가 가출을 하고 나서부터 아이가 배신감에 이러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말을 듣지 않아요.”
선도위원회의 위원들은 난희의 가슴 아픈 가정사를 들으며 함께 아파하며 엄마 편을 들었고, 철없는 난희의 행동이 엄마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만 설교했다. 난희는 적지에 홀로 던져진 포로 같은 마음이 들어 억울했다.
“아빠! 나 아빠한테 가면 안 돼? 엄마가 너무 싫어. 나 아빠한테 가면 잘할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면 안 될까?”
아빠와의 통화 후 결심을 한 듯 찾아와 아이들을 데려가겠다고 하자, 난희 엄마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의 생명에는 이상 없었지만 난희는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너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호리호리 한데 댄스 동아리에 들어와! 우리 꽤나 인기 좋은 동아리야.”
난희는 중2 때 학교 댄스 동아리에 엄마 몰래 가입했다. 브라탑, 짧은 반바지를 입고 춤춘다고 하면 난리부르스를 칠 것이 분명하기에. 다행히 댄스 동아리는 난희에게 숨 쉴 수 있는 통로역할을 했다. 멋지게 공연을 할 때마다 쏟아지는 찬사가 난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걱정과 불만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어서 빨리 엄마로부터 해방되고 무책임한 아빠를 원망하지 않는 그런 삶을 꿈꾸고 있는 난희에게 아이돌이 되는 것이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엄마 몰래 중 3때부터 오디션을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가족들의 지지를 받는 다른 참가자를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며 혼자 버텨냈다. 댄스학원은 언감생시 꿈도 못 꾸는 것이었기에 그녀의 실력은 평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빛나는 외모는 부족한 실력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십 대에 접어든 그녀는 역변 없이 여성미까지 갖추며 더욱더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예고진학도 소속사 연습생도 되지 못한 그녀는 일반고에서 댄스 좀 하는 얼짱정도의 명성을 날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학의 항공과로 진학하며 간혹 연기 단역 알바를 했다. 연습생을 꿈꿨지만 20대에 접어들면서는 나이가 많아 소속사 오디션을 가보지도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 난희야! 나 좀 도와줄래? “
단역 알바에서 만난 혜미가 난희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아이돌 연습생을 하다가 소속사 대표의 성희롱과 추행을 못 견디고 나왔다며 난희에게 과거를 털어놓았던 언니였다.
” 소개팅 자리인데 내가 잘 아는 오빠가 몇 다리 건너서 주선하게 되었어. 원래 원경이라고 같이 연습했던 친구가 가기로 했는데 다리를 다쳤지 뭐야. 하루 맛있는 것 얻어먹고 놀고 오는 자리라 생각하면 되는 가벼운 자리야. 너 분위기 좋은 데서 차 마시고 놀고 와. 이 언니도 나중에 신세 갚을게 “
난희는 혜미의 제안을 거절 못했다. 알바계의 대모인 그녀였기에 난희에게 소개팅을 제안했다는 것은 자신을 좋게 봤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
생각보다 훈남이고 순진해 보이는 남자의 말을 듣고 난희는 자신이 마치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을 더듬으며 띄엄띄엄 어리숙한 것이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듯도 하고, 처음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한 눈빛을 쏘더니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하다니 반전미의 쾌감도 느껴졌다. 호텔 커피숍을 나와 남자의 제안으로 저녁을 먹고, 같이 걸으며 난희는 그를 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유난히 빛나는 머릿결이 단정하면서도 얼굴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의 바라보는 눈을 의식한 남자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가 눈을 자꾸 깜빡거리며 불편한 듯 보여 난희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어머나!‘
그녀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자신의 손을 간지럽히며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고 깜짝 놀랐다.
“제 온몸이 당신에게 반응하고 있어요! 하하”
난희는 남자의 말이 싫지 않았다. 남자는 다음 날 만나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난희를 찾아왔다.
종호는 난희가 자신이 던진 미끼를 물길 바랬다. 드디어 페이크가 아닌 실사로 작품을 만들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할 것이고 개인 첫 작품으로 고이 간직하리라. 반반한 얼굴과 선이 고운 몸매가 매우 매력적인 난희를 보며 종호는 목적 달성을 위해 본의를 숨기며 애쓰고 있었다. 난희를 만날 때마다 종호의 머리카락은 더욱 윤기가 흐르며 난희를 유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