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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Aug 12. 2024

도돌이표

난희는 종호가 항상 묘했다. 자기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서 동시에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맘에도 없는 말을 한다 싶다가도 매일 찾아와 사랑 고백을 하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난희의 혼을 쏙 빼놓았다.

종호가 사랑고백을 할 때 그의 머리카락은 유난히 반짝이며 아름다웠다. 난희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 감정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그의 행동은 늘 헷갈리게 하는 뭔가가 있어 난희는 혼란스러웠다.     

"너 남자 만나니? "     


역시 엄마의 촉은 속일 수가 없다.


"결혼 전까지는 몸가짐 조심해라. 너처럼 순진한 애들이 얼마나 당하고 사는지 티브이 보면 알지?

엄마도 네 아빠 같은 사람 때문에 평생이 고통이다. 요즘 데이트 폭력이다 뭐다 이상한 남자애들 많아!"     


난희는 걱정인지 저주인지 알 수없는 말로 시작되는 엄마의 잔소리가 하소연으로 치닫다 눈물로 끝맺음하는 도돌이표를 알고 있었다. 아무 대꾸 없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데...”     


종호는 종종 핸드폰을 들고 난희의 모습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으려 했다. 항상 난희의 영상을 찍으며 다양한 포즈를 요구했다. 만남 초기에 수줍었지만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승낙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만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그녀는 종호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그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 외에 매력적인 요소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자신과 결혼까지 생각하냐는 말에 늘 대답을 머뭇거리는 그를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았다.     


“우리 그만 헤어져!”


난희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문자에 종호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난희를 만난 지 3개월 남짓 애초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리라는 목표 달성도 못한 채 이별 통보를 받다니 종호는 난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단 만나! 헤어지더라도 얼굴 보며 이야기하자!”     


난희를 앞에 두고 종호는 슬픈 연기를 해야만 했다. 마음에도 없는 뻔한 거짓말을 하며 좀 더 만남을 가지며 서로를 더 알아가자는 말로 달랬다. 앞으로 자신이 더 잘하겠다는 말로 난희를 달래보고자 했다. 팔짱을 끼며 전에 없이 쌀쌀한 분위기를 내뿜는 난희의 태도가 몹시 못마땅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종호는 구차한 생각이 들어 쩔쩔매는 자기 행동 또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가 튕길 때 못 이기는 척 받아줘야 해! 그래야 네가 난희에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또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에 종호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만해!”


종호는 난희를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 명령하듯 날카로운 음성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 난희가 저렇게 도도한 자세로 자신을 내려다 보는 통에 마음이 상해있는 상태에서 들려오는 명령조의 환청에 종호도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그만하라니까!”     


그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리고서는 난희의 손을 거칠게 잡고 카페를 나섰다.


“야! 얼굴 좀 반반하다고 대우해 주니까 네가 뭐 대단한 아이돌인 줄 아나 보지? 이대로는 못 헤어지지”

     

난희는 광폭하게 변한 종호를 보며 겁이 났다. 갑자기 자기의 손목을 움켜쥐고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힘을 쓰는 모습이 너무나 두려워 바들바들 떨었다.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며 도망가려 했지만 그의 광기 어린 초인적 힘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엄마가 집요하게 아빠를 괴롭힐 때 광기의 눈으로 쳐다보며 집안의 온 물건을 집어던지며 고함을 지르고 마치 배고픈 야수처럼 아빠를 물어뜯었던 것과 같이, 난희는 종호가 엄마처럼 자신을 물어뜯고 영혼을 잠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이 집착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악!”     


난희는 있는 힘껏 종호를 밀쳐내려 힘썼다. 질질 끌려가다가 버티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며 종호를 말리기 시작했다. 괴력의 종호는 여러 사내가 말렸음에도 좀처럼 난희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어머! 저 사람 뭐야? 아까 그 사람이 맞아? 가발을 쓴 거였어?”   

  

난희의 손목이 풀어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난희는 정신을 차리고 종호를 살폈다. 가발이 벗겨진 종호는 볼품없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떨어진 가발을 찾고 있었다. 가발은 난희 앞에 떨어져 있었고, 생각할 겨를 없이 가발을 주워 전력 질주로 빠져나왔다.  도망가는 난희를 잡지 못하고 종호는 계속 가발을 찾으며 짐승처럼 소리만 질렀다.      


"야! 어딨어? 가발새끼야! 빨리 주인에게 돌아와야지!"


택시를 탄 난희는 종호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며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며 한스러워 눈물을 닦고 차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자신에게도 일어나는 것 같아 마치 돌림 노래 시작일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딸년 팔자는 엄마 닮는다고 했다! 그러니 너도 아빠에게 매달려야 해! 너도 바람난 여자때문에 고통받을 지도 몰라!"


 엄마의 말에 아빠의 배신이 치가 떨리게 미웠고 증오스러웠는데 어쩌면 자신은 아빠를 닮았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엄마를 어렵사리 떼어내고 도망친 아빠의 팔자.

 두 손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자 손에 있던 가발의 부드러움이 전해졌다. 종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 윤이 나는 그것이 난희에 손에 있었다. 가발은 더없이 부드러운 촉감으로 난희의 손을 매만지는 듯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발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달랬다.    


“가까운 경찰서로 가 주세요!”


                                         [이미지 출처 : DALL-E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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