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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Jun 07. 2019

오늘의 영화, 아사코

뒤죽박죽 섞인 감정에 잠식된 기분 (약 스포)

아사코에는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이 담겨있다.


첫눈에 상대에게 꽂히는 강렬함, 급속도로 빠져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신비, 사랑에 빠진 자의 행복, 영문을 모른 채 당한 이별에 대한 막막함, 원망하고 싶지만 원망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애증, 가랑비같이 젖어가는 다정에 대한 혼란스러움, 등등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을 멍하니 바라보며 되게 좋은데 좋은 이유를 몰라서 답답했는데 지금 정리하다가 보니까 저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뒤죽박죽 섞인 감정에 잠식된 기분. 마음속이 꽉 찬 느낌을 받는다.


영화에 ‘판타지’가 섞여 있다는 인터뷰를 보며 나중에 찾아오는 ‘바쿠’는 아사코가 만들어 낸 환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벼락같은 사랑을 나눈 첫사랑과 갑자기 헤어진 뒤 마음속에 묻어놓고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그에 대한 미련이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아사코를 덮쳐왔고 이제 제대로 된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된 거지. 사랑은 시작만큼 끝맺음도 중요하니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사코를 이해한다고 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아사코 같은 면이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어떤 선배를 좋아했는데 고백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긴 스토리가 있었으나 여기서는 생략) 그렇다 보니까 이제 그만 좋아해야지, 때려치워야지 다짐을 해도 그게 잘되지 않았고 질질 끈 세월이 5년이었다. 중간에 누군가와 감정이 싹터도 그 선배를 만나면 흔들리는 과정의 연속. 나도 이런 내가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마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미련을 놓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어렸고 사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순진했다.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아사코를 일방적으로 탓하고 싶지가 않다. (물론 료헤이를 생각하면 못된 X 이긴 하지)


아사코가 열심히 료헤이를 밀어내다가 지진을 계기로 그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게 된다. 지진 장면은 왜 필요했던 걸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해보자면 지진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마음에 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료헤이가 들어온 게 아닐까? (아니면 말고)


바쿠와 진정한 이별을 하고 방파제에 혼자 올라서서 바다를 봐라 보던 아사코는 긴긴 연애의 끝에서 성장을 한다. 아마 료헤이는 평생 아사코를 원망하겠지만 끝내 버리지 못한 ‘진탄’처럼 아사코와 함께 어우르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란 언제나 이렇게 희생을 한다.


아사코에게 있어서 료헤이와의 사랑은 강처럼 아름답다. 료헤이에게 아사코와의 사랑은 강처럼 더럽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누군가에게는 더러울 수 있는 게 사랑.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으니까. (인용: 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그래서 나에게는 너무나 ‘호’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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