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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Jun 07. 2019

오늘의 책, 소년이 온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힘들어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감당이 안 돼서 하루에 한 챕터 이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버거워서 중간에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외면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사명감 비스름한 게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도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게 아닌가 싶다. 그 시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 봤고 수없이 TV에서 언급되고 있고 영화 소재로도 많이 쓰였으니까. (지금도 5.18 관련 새로운 소식이 뉴스에서 나오고 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저 우스웠다.


마지막 이야기를 읽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라 조금만 울컥해도 잘 울어서 웬만하면 우는 것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 울었다. 아마도 이런저런 감정이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잘은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크던 작던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좋은 책이더라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할 때도 있으니 좋은 책이냐 아니냐 랑은 약간 다른 개념이라고 본다. 자주 느끼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찾아오는 그 순간이 너무 강렬하고 짜릿해서 그래서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소년이 온다’는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을 받았다. 분명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그게 무엇이든.


요즘 매일 같이 들려오는 TV나 인터넷 등에서 모욕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고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래 봤자 다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게 참 씁쓸하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다음 문담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소년이 온다, 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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