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게 빠르다

(2023.7.6.)

by 박진환

"단계가 충분히 촘촘하다면, 우리는 모두 수학의 단계를 밟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문제를 세부 단계로 나누는 법과 서두르지 않는 법을 알기만 하면 되지요."(초등수학, 론 아하로니, 2020. 53쪽)


유대인 수학교수 론 아하로니의 <초등수학>에서 강조하는 문구이자 가르침이다. 물론 이 가르침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아이들마다 속도가 다르고 어떤 아이들은 속도가 더 느리다. 이 차이를 아우르는 수업을 하기란 현 공교육체제에서는 너무 힘들고 때론 불가능해 보인다. 어쨌거나 위 가르침은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상식이 현행 초등 공교육 수학수업에서 적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해마다 2학년부터라도 수포자가 생기는 걸 보면 상식이 보호자나 교사에게 확실히 다가가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론 아하로니 교수가 초등학생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그들의 교육격언을 확인하는 절차를 다시 밟아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헷갈려 하는 부분을 다시 다듬고 평가에 들어갔다. 그들의 교육격언에는 이런 게 있단다.


"수업은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사물로 배우고, 그 다음에는 그림으로 배우고, 마지막에는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1학년 수학의 덧셈과 뺄셈에서 어려워 하는 부분 중 하나는 '더 크다', '더 작다.' '더 많다.' '더 적다'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이런 문제를 어려워 한다. 실제로 그렇다.


"도난는 조셉보다 연필을 4자루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만약 조셉이 연필을 5가루 가지고 있다면 도나는 연필을 몇 자루 가지고 있을까?"


이 개념은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이 '~보다 더 크다'라는 표현에 익숙하다고 해서 '~보다 4만큼 더 크다'라는 표현까지 익숙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방식을 따라해서 두 아이가 서로 가진 나무조각의 갯수를 맞추거나 다르게 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아 누가 얼마만큼 더 가지고 있는지, 덜 가지고 있는지를 직접 말하게 하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즉, 구체적인 사물로 배우며 직접 말하며 생각하게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책에 9단계의 계단을 그리고 두 사람을 각기 다른 계간에 위치하게 해서 두 계단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게 했다. 이를 테면, 8번 계단에 있는 사람은 5번 계단에 있는 사람보다 세 계단 위에 있습니다. 아니면 5번 계단에 있는 사람이 8번 계단에 가려면 세 칸을 더 가야 합니다. 이것은 수직선으로도 설명을 했지만,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두 번째 단계인 그림으로 배운 것인데, 세 번째는 추상적인 내용으로 옛이야기에 나오는 수수께끼를 아이들에게 던져 풀게 했다. 즉 "형의 나이를 하나 떼어서 동생하게 주면 둘의 나이는 같게 되고 동생의 나이를 하나 떼어 형에게 주면 두 배가 되는데, 형과 동생의 나이는 몇일까요?"


신기하게도 어려운 문제였지만, 이 과정을 거치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맞힐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좀 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늦을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이렇게 학습하는 것이 빠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이런 과정을 거치고 덧셈과 뺼셈 평가를 모두 마무리 했다. 지도서에 있는 단원평가를 해 봤는데, 평소에 문제지로 학습하지 않은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객관식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실수로 덧셈과 뺼셈을 뒤바꿔서 해결하는 아이들도 꽤 많았다. 하나씩 적응하며 나갈 수 밖에 없을 듯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물론 서둘러야 하는 아이들 몇몇도 있지만...


3-4교시에는 그림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상당수 아이들이 일기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그림일기에 대한 뜻도 몰랐다. 그래서 보여준 것이 송언작가의 <학교 가는 날> 그림책. 과거와 현재 사이의 1학년 입학과정의 풍경을 왼쪽과 오른쪽에 그림일기 형식으로 나타내 쉽고도 재미있게 그림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그림책이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으로 지난 과거의 입학식과 오늘날의 입학식을 이해하면서 그림 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갔다. 국가교육과정 1학년 1학기 맨 끝 단원에 그림일기가 나오지만,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장쓰기가 원할치 않아 1학년 첫해에는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더구나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야 하는 그림일기가 처음에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상당한 노동시간이 필요해 비추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모조건 터부시는 하지 않고 그림일기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렇게도 일기를 쓸 수 있다는 데 맛보기 수준에서 아이들에게 지도하고 글을 쓰게 한다. 오늘은 시간이 모자라 글만 쓰게 했다. 지금 떠오르는 오늘, 어제, 지난 일을 말하게 했다. 어린 아이들의 글쓰기는 바로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냥 생각만 해서 쓰게 하면 매우 어려워 한다. 부지런히 말하게 하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뭘 쓸지를 생각하며 그나마 글로 옮겨 낼 수 있다. 아이들과 저마다 이야기를 하게 하고 듣게 하며 시간을 보낸 뒤, 간단히 글로 쓰게 해 보았다. 틀려도 되고 틀리면 고쳐줄 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모두 다 제한된 시간에 쓰지 못했지만, 몇몇 아이들이 쓴 글이 맘에 든다.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지만 기다려주되 제대로 피드백을 해서 다음 학년으로 올려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이 제대로 빠르게 성장하는 길이다. 평범한 이 가르침을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지만, 교사라면 어른이라면 해야 하고 도와야 하는 일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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