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대강 할 수는 없다

(2023.8.22)

by 박진환

이제 어느덧 하루의 루틴을 아이들이 스스로 터득한 것 같다. 누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책상자 안에 있는 책을 꺼내 읽는다. 나는 그 시간에 자연스럽게 차를 준비하고 차를 마시며 아이들은 책을 읽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옛이야기 한 편을 들려준다. 오늘도 새로운 옛이야기에게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새로운 루틴인 '하루에 한 문장 쓰기'로 들어간다. 언뜻보면 한 문장 쓰게 하는 게 뭐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릴까 하지만 그건 이시기의 1학년을 모르는 말이다. 잘 읽는 아이들도 이 시기에 글을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제법 많다. 따라서 이 시기의 글쓰기 지도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 2주만 지나면 자리를 잡을 것이니 9월부터는 자유롭게 아이들이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첫 수업은 '하루 한 문장 쓰기'지도로 조금 늦어졌고 이어서는 백희나 작가의 작품을 교실 속 책장에서 찾아 전시해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다. 9월에 서울로 백희나작품 전시회도 관람하고 뮤지컬도 관람해야 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어 이번 작업은 그 시도가 되었다. 몇몇 책은 집에 가지고 있는 책도 있고 잘 보이지 않아 다음에 더 찾아 전시해 보기로 했다. 오늘 아이들이 고른 그림책은 <이상한 엄마>였다. '호호'라는 아이의 엄마는 직업을 가진 주부. 호호가 아파서 조퇴를 해 비가 오는데도 집으로 혼자 갔다는 전화를 받고는 급히 호호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또 전화를 한다. 그런데, 전화가 잘못 갔다.


하늘 선녀 할머니에게 엉뚱하게 전화가 가서는 얼떨결에 지상으로 내려와 호호에게 계란국을 끓여주고 건조한 방을 달걀 흰자와 우유로 구름을 만들어 피곤하여 지친 호호를 눕혀 재우고는 홀연히 집을 떠난다는 이야기. 그것도 선녀 옷을 놔둔채. 아이들은 신기한 듯 재미있는 듯 그림책을 감상하고는 저마다 궁금한 것들, 자신이 아팠을 때 어땠는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무도 집에 없을 때, 혼자 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면서 부모님이 없는 자유를 누렸다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는 어이없이 웃기도 했다. 두 번째 책 이야기가 기대가 된다는 아이들에게 시간은 이미 중간놀이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에는 시계를 마무리 하는 시간. 오늘은 시간이 그려진 시계를 종이에 인쇄해 자석을 붙여 몇 해전에 교구로 만들어 놓은 것을 활용해 수업을 했다. 먼저 어제 베운 시를 읽는 법을 확인하고 몇시 30분을 읽은 법을 연습했다. 여전히 한 두 아이가 헷갈려 한다. 읽는 건 어느 정도 하는데, 자꾸 헷갈려 틀리고 직접 시계를 그리는 게 원활하지 않다. 그래도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 익히는데 만족해야 했다. 끝으로는 학습지에 그려진 빈 공간의 시계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몇시 30분을 그려 넣어 빙고놀이도 해 보았다. 아이들은 너무도 신나게 이 시간을 즐겼다. 생각보다 일찍 끝난 시계 공부시간. 이후 5교시는 교과서에 실린 이상교 시인의 발가락을 옮겨 써 보고 시 바꿔 써 보기를 해 보았다.


이제는 제법 정해진 공간에 글자 크기를 조절하여 글을 쓰는 아이들이 늘었다. 나중에 바꿔 써보게 한 시 바꿔 써 보기는 역시나 처음이고 정해진 틀에 맞춰 쓰는 거라 아이들의 저마다 색깔을 드러내기가 어려워 보였다. 시간이 더 필요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2학기 남은 기간은 4개월이다. 그다지 길지는 않다. 그런데 이 4개월 동안 아이들은 참 많은 변화를 한다. 그것을 알기에 대강대강 할 수는 없다. 2학년으로 잘 올려 보내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알차에 보내야 한다. 오늘도 그 알찬 하루 중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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