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폭풍은 지나갔지만

(2023.9.5)

by 박진환

고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갔다. 정부의 어설픈 으름장이 옹색할 만큼 교사들의 분노는 무자비한 징계 협박을 이겨냈다. 교사들은 이번 싸움에서 스스로 감동을 받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이번 투쟁의 과정에서 재량휴업을 용인하지 않은 비겁한 교장들의 민낯은 정부의 징계는 없다는 선언(?)에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앞으로 학교에 남은 갈등의 해결과정은 또 다른 과제로 남았다. 아울러 정치색이 없다는 이유를 근거로 징계를 거두겠다는 장관의 발언은 교육의 정치투쟁화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이어서 이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현재 교육사태가 단지 악성민원과 아동학대법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은 교권회복에 관한 법령개정과 아동학대법 개정, 이에 어울리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재정확보 등 산적한 사안들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폭풍은 아직 오지도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교육이 불가능해진 지점에는 좀 더 근원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번 싸움의 뒤가 더 두렵다.


폭풍 뒤로 자리한 교실은 여전히 평온하다. 그런데 먼저 온 아이들 셋이 바쁘게 움직이며 조잘거린다.


"뭐 하는 거야?"

"조금 있으면 엄마들이 교실로 온대요."

"맞아, 이번 주 금요일에 다모임이 있는데, 왜?"

"그러니까 사물함하고 서랍 청소를 해야죠."

"벌써?"

"안 그러면 나중에 엄마한테 어마어마하게 잔소리 들어요."

"설마. 하하하."


귀여운 아이들의 몸짓과 말만 들어도 바깥 세상과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아침이었다. 어김없이 아이들은 돌아오고 오늘도 책 읽고 차 마시고 하루 한 문장 쓰기로 하루의 루틴을 빠르게 이어갔다. 오늘은 도자기 만드는 수업도 있는 날이어서 조금 서둘렀다. 마침내 도자기 수업시간이 시작되고 마을교사의 방문과 준비로 무리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도자기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은 예상한 대로 무척이나 컸다. 몇 번 경험해 본 아이들의 급한 말들이 섞였지만, 노련한 강사분의 진행과 1-2학년 담임 두 명의 지도로 전 과정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오늘은 차 받침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찰흙을 손으로 만지며 바닥을 다지면 선생님들이 바닥을 밀어주며 받침의 벽을 올려 세울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갔다.익히 알고 있는 방법대로 찰흙을 길게 뽑아 벽을 만들고 매끈하게 다지는 과정까지 아이들은 서툴지만, 정성을 다했다. 이번 마을교사 초대과정은 교육청 지원비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2학년과 협업을 하여 한 번 경험할 과정을 두 번 할 수 있는 과정으로 짰다. 비좁은 교실이었지만 충실하게 즐겁고도 신나게 이번 과정을 보낸 우리 아이들이 대견했다.


도자기 수업을 끝낸 뒤, 나는 아이들과 수학교과서를 중심으로 60부터 90까지의 수를 읽고 쓰는 복습을 다시 해 보았다. 수세기 조작물을 가지고 문제도 내보면서 실제로 낱개가 있는 수까지 읽는 연습을 하고 난뒤에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가위바위보로 하는 놀이수학도 해 보았다. 역시나 아이들의 적극성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적절하게 조절해 아이들에게 져 주는 수준에서 놀이수학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다. 60~100까지의 수를 다음 주에는 그림책으로도 만날 수 있도록 안내를 해 보려 하다. 100층 버스를 실제 만들어 교실에 붙여 볼까도 싶다. 2017년 이후로 다시 처음 해 보는데 사뭇 에전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아이들이 잘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늘은 잠시 시간을 내어 김장 무를 심기도 했다. 감자를 심은 곳에 무를 심는데, 나가기 전에 무씨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나가게 했다. 예전 6학년들이 해마다 무를 심으면서도 무씨가 코팅된 것인지도 모르고 심었다 해서 놀랐던 적이 있었다. 이번 아이들에게는 잘 설명해 주었더니 놀라워 한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생태에 대한 잘못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이 아이들은 1학년때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그렇게 배우고 나서 무씨 심는 과정을 화면으로 보고 밭으로 나가서 주사님의 도움을 받아 무씨를 밭에 심었다. 세 알씩 구멍난 흙에 넣고 흙을 덮어가는 과정까지 경험한 아이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와 무씨 관찰기를 썼다. 이제 글을 어느 정도 쓸 수 있으니 가능했다.


하~ 날씨가 무척 맑다. 마치 폭풍이 몰아친 뒤의 맑은 날 같다. 세상이 늘 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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