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렇다는 거다

(2023.10.5)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86

by 박진환

쌀쌀하고 흐린 아침이었다가 다시 맑게 개인 하늘이 되었다. 초가을 볕을 쐬며 뛰어 놀던 아이들은 덥다고 난리다. 아직도 낮은 뛰어놀면 여름인가 보다.


오늘은 약 두 달에 걸쳐 해 온 '하루 한 문장쓰기'를 마무리 하는 날이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은 아침마다 이 활동을 해 오면서 쓰기에 대한 감각을 익혀 나갔다. 한 줄도 쓰기를 힘들어 하던 아이들이 이제 제법 자기 생각과 겪은 일을 풀어내는데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이 활동은 제 몫을 다 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눈치 챘을까? 00이가 포스티잇 10장에 걸쳐 잔뜩 글을 써 낸다. 오늘 무엇에 꽂혔는지, 햔달 전만 해도 글 쓰는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녀석이 이제는 포스트잇 여러 장을 붙여 글을 쓰는 재미에 빠져 있다. 아쉽게도 오늘이 마지막인데, 녀석은 거침없이 글을 잘도 써내려 갔다. 글씨도 이제 어느 정도 정돈이 된 것 같다.


오늘치를 다 쓰게 하고는 나는 아이들에게 일기 쓰기를 제안했다. 그리고는 예전 내가 가르쳤던 어린 아이들의 글을 몇 편 읽어주었다. 14년 전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2학년. 녀석들은 이제 대학을 갔다면 졸업을 이미 했을 나이다. 그 시절 2학년 36명의 아이들이 쓴 글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살아 있었다. 그 글을 7년 전 책으로 엮어 내었다. <내 꿈이 어때서>(2006, 휴먼어린이)


그 글을 아이들에게 들려 주노라니 마구마구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주마등 스처 가듯'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늙어가는 것일까. 괜히 순간 울컥할 뻔하고 가슴이 씨릿한 것이 살짝 아파오는 듯하기도 하는 것이....오늘 아이들 일기쓰기 지도를 하면서 괜히 마음만 울쩍해졌다. 서둘러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에게 일기 쓰는 법을 가르쳤다.


교과서에는 맨 마지막 단원에 나오지만, 두 달동안 집중해 글쓰기 연습을 시킨 아이들에게는 그런 진도는 의미가 없었다. 곧바로 컴퓨터 모니터를 켜서 아이들에게 나눠 준 일기장 속지처럼 줄이 나뉘어져 있는 칸을 만들어 보이고는 오늘 00이가 10장이나 쓴 상황을 예로 들어 나의 일기를 써주었다.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의 이야기라 그런지 웃으면서 신기한듯 일기 쓰는 법에 집중했다.


날짜를 쓰고 날씨는 감각적으로 재미나게 쓰고 제목을 꼭 쓰고 내용을 쓰는데, 대화 하는 글은 큰 따옴펴를 써서 한 줄로 따로 나타내게 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혹자는 1학년이 이걸 단 번에 어떻게 하겠냐 하겠지만, 천천히 제대로 가르쳐 주면 이 어린 아이들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쉽게 접근하기 위해 하루 한 문장쓰기를 한 것이기도 하다. 내일 당장 어떤 글을 써올지 벌써 기대가 크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도 있었다. 손님이라기 보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될 분이다. 온채움선생님이라고 교육청에서 보조교사 개념으로 학교에 배치해서 교사의 수업과 느린 학습자를 돕는 역할을 하는 분이 우리 교실에도 오신 것이다. 1학기에도 오실 수 있었는데, 좀 더 도움이 필요한 2학년에 모든 시간을 몰아 준 탓에 이제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오신 선생님은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나에게 오늘 수업 두시간을 어떻게 진행할지, 무엇을 도와주시면 되는지를 말씀드렸다. 매우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함께 하려 해서 정말 고마웠다. 특히 수학시간 내내 느린 아이들을 옆에서 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나도 도움이 됐지만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부디 결과로도 크게 달라지길 바랄 뿐이다.


오늘의 수학시간은 마침내 덧셈과 뺄셈으로 들어가는 첫 날이었다. 오늘은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에 대한 개념을 다시 확인하고 에그블록으로 덧셈의 원리를 익혀 나갔다. 공책에 색깔을 달리하여 그림으로도 기호로도 나타내며 가로셈과 세로셈에 대한 이해도 높여가며 덧셈의 원리를 익혀갔다. 에그불록으로 충분히 수의 자리와 덧셈의 상관관계를 반복해 익힌 다음에는 교과서에 있는 문제를 확인하며 복습을 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하~ 가을 하늘이 눈부시도록 맑다. 이 맑은 날 나는 곧 출장을 가야 한다.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보호자 상담을 해야 하고 겸사겸사 학급업무를 보려 야근을 한다. 이 맑은 날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데...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들려준 글이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부른 탓이 큰가 보다. 뭐 그렇다는 거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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