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같은 아이들이 왔다

- 입학실 날에(2023.03.02)

by 박진환

'아침에 여유를 부렸던 게 차라리 나았던 걸까?'

'아님 부지런했어야 했나?'


이런 생각을 잠시 잠깐 했던 하루였다. 사실 입학식이라 학교에 8시쯤 도착하려 했다. 그런데 아침에 10분 늦게 일어난 탓에 출발도 늦었다. 차는 새학기 첫날인지 막히기 시작하고 겨우 8시 25분쯤 도착. 교실에 들어서서 생각해 두었던 헬륨가스로 풍선을 부는 일을 시작했다. 교감선생님도 따라 들어오셔 도와주셨는데, 이게 웬걸... 20개용 헬륜가스통이 10개도 채 못채우고 사라지는 게 아닌가? 정말 난감했다. 과학실에서 출발할 때 아이들마다 손에 하나씩 들려주고 6학년이 1학년 교실로 안내해야 하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풍선 9개만 둥둥 떠다니는 교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마음을 고쳐 먹고 바로 다른 작업으로 들어갔다. 벌써 9시가 다 돼 가는 중이었다.


다음 작업은 미리 준비했지만, 깜빡하고 하지 못했던 내 책 <1학년은 처음인데요>에 아이 이름으로 우리 부모님들께 선물로 전해주고자 사인을 하는 일이었다. 쌍둥이가 있어 12권을 써야 하는데, 마침 교장선생님이 한 아이가 먼저 부모 없이 도착했다고 챙겨야겠다는 것이었다. 이름은 백효정. 익히 사진으로 봐서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효*아, 반갑다."


수줍은듯 하지만 또 게의치도 않은 듯 내 안내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는 교실을 둘러 보며 다리를 흔들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효*아, 교실 어때?"

"좋아요. 예뻐요."

"그래, 다행이다."


"선생님, 지금 일해야 해서 옆에도 그림책이 있고 앞에도 그림책이 있는데 함 보고 있을래?"


그렇게 효*이를 안내하고는 이내 사인을 하는데 집중했다. 한 명 한 명 아이들 이름을 쓰며 오늘 교실에서 만날 아이들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마감을 짓고는 효정이를 현민샘에게 맡겨 과학실로 보내고는 나는 입학식 준비를 했다. 학교가 공사 중이라 마땅히 식장에서 할 수 없는 터라 부득이 교실에서 식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 신경을 쓴 지난 2주였다. 느티나무동 건물 바깥에서는 6학년이 새싹이들의 손을 잡고 나오고 마중 대열을 섰던2-6학년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었다. 그렇게 현관을 지나 교실로 들어선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나는 한 명 한 명 이름표를 걸어주었고 6학년 아이들은 해당한 아이들의 자리를 찾아 앉게 해주었다. 올해 짝학년이 6학년인데, 자주 만나 서로를 알아갈 기회가 생기길 바랐다. 낯선 공간에 들어왔지만, 보호자도 함께 들어온 교실이어서 아이들은 전혀 긴장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국민의례를 마치고 교장선생님의 입학선언 이후 나는 곧바로 아이들과 만남의 시간을 마련했다. 잠시 보호자분들은 과학실로 이동했고 나는 아이들에게 작가 송언의 그림책 <1두근 두근 1학년, 선생님 사로잡기>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나와 앉으라는 말에 쭈뼛쭈뼛 나섰던 아이들.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도 몰라 처음에는 서툴러 보였지만, 도우미 현*샘의 안내로 둘러 앉아 그림책을 함께 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자, 선생님이 보여줄 그림책은 함께 따라 읽어 볼까요?"

"두근두근 1학년"

"선생님 사로잡기"

"사로 잡는게 뭔지 알아요?"

"잡는 거."

"맞아요. 그런데 그냥 잡는 게 아니라 이렇게 감싸면서 확 잡는 거야."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주*이가 내 다리를 확 잡더니 끌어 안듯이 당겼다. 그렇게 나도 안아주며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맞아요. 주*이처럼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휘어 잡는 걸 사로 잡는 거라고 하지요. 근데 왜 이 표지 주인공 여자아이는 선생님을 사로 잡으려 할까?"


"선생님 마음에 들려고요."

"와, 맞아요. 와, 대단한데...근데...여기 여자친구는 누굴까?"

"주인공!"

"맞아, 근데 여기 누구랑 닮은 거 같은데...하하 수*랑 닮았다. 그지?"


이렇게 그림책 표지로 한동안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호랑이선생님이 등장하자 아이들 시선은 사뭇 달라졌다. 윤하라는 주인공 여자아이가 호랑이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고 선생님을 사로잡고 싶어 할머니, 아빠, 엄마, 심지어 키우는 고양이에게 물어 결국 답을 찾아낸다는 이야기. 특히 할머니는 귀는 쫑긋, 눈은 말똥, 입은 쌩긋해야 한다고 윤하에게 주의를 주는데, 이걸 우리 아이들에게 따라 해보라 했더니 얼마나 귀엽던지. 결국 수수께끼를 좋아한다는 호랑이선생님에게 사과를 표현하는 수수께끼를 맞히게 하는 이야기로 끝나는 그림책을 아이들은 너무도 재미있어 했다.


그렇게 그림책을 보여주고 다시 보호자분들을 교실로 들어오게 하여 책상 위에 있는 선물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몇 가지 당부말씀을 드렸다. 그리난 뒤에는 준비해 둔 에코백에 염색펜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에 색을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칠하게 했다. 올 일 년 두고두고 쓸 가방을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칠하는 풍경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내가 연출한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색을 칠하고 난 뒤, 선물을 모두 챙기고 마지막 의식을 갖추었다. 지난해 서울서 수학교과 공부모임을 하면서 동료선생님들이 마노자갈을 유리병이나 투명한 병에 하나 넣으며 첫 날을 상기시키는 활동으로 삼은 것. 이것은 수학 수세기 활동의 하나로 나중에 100까지 이어지며 우리가 만난 백일을 기념하는 용도로도 쓰일 것이다.


1번 고**이 투명통에 넣은 마노자갈을 기점으로 참가한 모든 어른의 박수로 시작한 우리 새싹이들의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바깥 현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13명의 아이들과 한 해를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마구 들었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1학년들. 다들 나를 사랑해 주려는 마음이 가득한 아이들이었다. 두 녀석은 나한테 달려와 안아달라고 했고 한 녀석은 손을 잡아 달라 했다. 그 아이들의 요구를 모두 받으며 문득 7년 전 천안 00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지민이가 떠올랐다. 이번에 중학생이 된다고 연락이 와서 달려가 선물도 주고 지난 6년 전을 돌아보는데, 이 녀석 그 시절 그렇게 안아달라고 졸라댔던 녀석이 이제는 수줍어 웃기만 하는 게 아닌가. 이 아이들도 그러겠지 하며 씩 웃었다.


페북을 들어가보니 지인들이 여기저기서 입학과 개학을 알리는 글과 사진을 올려놓기 바빴다. 그 가운데 절친이자 동지인 경기도 광주시 쌍령초 김영주교장이 이런 표현을 썼다.


"별 같은 아이들이 왔다. 별을 빛내고 품을 샘들이 왔다."


맞다, 오늘 내게는 별 같은 아이들 13명이 왔다. 나는 그 별들을 빛내고 품을 도사선생이다. 어서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그 별들을 내일은 좀 더 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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