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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05. 2024

이걸 단 하루만에 다 보여주다니...

(2024.3.5.)

"치사하게 어제는 안 보여주고..."

"치사하다니...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래도 숨겨 놨잖아요."

"너희들 이걸 보고 놀랬니?"

"네. 치사하다."


새 교실에 새로 들어온 장 앞에는 이동식 칠판이, 뒷편에는 책 장이 들어가 있는데, 오늘 책 하나를 찾고 꺼내다 밀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 오줌 마려워요."

"선생님, 저 응가 마려워요."

"선생님, 배고파요."

"선생님, 여기가...아파요."

"선생님, 언제 밥 먹으러 가요?"

"선생님, 나 김치 안 먹어요."

"선생님, 난 김치 많이 먹어요."


밥 먹기 전까지 아이들이 족해도 열 번은 외쳤던 말들. 1학년이면 당연히 하는 말인데, 이게 일주일도 한 달도 아니고 하루만에 불과 12명의 아이들 입에서 쏟아질 줄은 몰랐다. 1학년 다섯 번째 맡지만, 이런 경우를 오늘 처음 만나 살짝 당황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귀엽기도 나중에는 어이가 없기도 하면서 하루만에 나도 복잡한 생각들이 넘나들었다.


당연히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딴짓을 하며 움직이는데, 다시 고쳐 잡아 앉게 하고 눈을 내게 보게 하고 여러번 이야기 하는 상황이 오늘 내내 벌어졌다. 하하하. 이거 내가 1학년 처음 맡는 기분이랄까? 한동안 내가 온전히 완숙한 1학년을 맡았던 것일까? 나도 상황 파악을 빨리 내려 아이들을 다시 한 곳에 모아야 했다.


시작은 차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했다. 오늘 보호자들께 부탁드렸던 차와 잔을 자기 자리로 가지고 오게 했다. 역시나 여기 저기서 난리다.


"저, 아무리 찾아도 잔이 없어요."

"저도요. 안 보여요."

"나도 없는데. 엄마가 안 줬어요."


"아니야, 분명히 있을 거야. 분명히 있어 다시 찾아 봐."


1학년 아이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보호자들이 꼼꼼히 준비물 상황을 안내하지 못한 까닭도 섞여 서너명의 아이들은 한동안 찻잔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결국은 내가 나서서 가방을 뒤져 다 찾아주었다.


"아, 이게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아요."

"그걸 왜 나보고 뭐라고 하니. 하하하."

"아, 이거였네."

"거봐. 있잖아."


나중에 치약 칫솔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에는 몇몇 아이들은 찾아내 주었고 오늘 못 가지고 온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책상 위에 가지런히 얹은 찻잔들.


"선생님, 무슨 차 먹어요?"

"나는 차  싫어하는데."

"선생님, 꽃차면 나 못 먹어요. 알레르기 있어요."

"와 냄새가 좋다. 파스타 냄새가 나."

"뭐, 정말? 정말 파스타 냄새다."

"선생님, 써요. 안 먹으면 안 돼요?"


여기에 내가 응한 답은


"오늘 너희들을 위해 특별한 차를 준비했지. 짜잔~~"

"오늘 같이 먹을 차는 너희들 유자 아니? 유자랑 모과랑 합친 거야."

"나, 유자 알아요."

"모과는 모르는데."

"한 번 마셔봐. 작년에도 저기 보이는 2학년하고 같이 지냈는데, 그 애들도 처음에는 차 마시는 거 안 좋아 했는데, 나중에는 더 달라고 난리였어. 너희도 그럴 걸?"


그렇게 시작한 첫 차 마시는 시간을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한 녀석은 끝까지 다 못 먹겠다는 걸...주위 친구들의 격려와 응원으로 겨우겨우 마실 수 있었다. 오늘 첫 고비가 그냥 고비였기를 바라며 내일을 기약했다. 차를 마시는 사이에 난 오늘의 첫 옛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둔갑한 쥐'라는 이야기는 도사인 내가 주로 쓰는 도술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매번 먼저 들려준다. '둔갑'이라는 말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선생인 나, 아니 도사인 내가 그 둔갑을 할 수 있다는 헛소리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이들은 이 1학년 아이들은. 특히 이번처럼 아직 유치원의 그림자를 꼭꼭 쥐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잘 먹혔다. 도술을 보여달라는 말에 '둔갑한 쥐'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보여주었다.


"오늘 특별히 첫날이니까. 보여주는 건데, 이 도술 부릴 때 여러분이 좀 신경 써야 할 게 있어."

"뭔데요?"

"음...웃으면 안돼."

"왜요?"

"아니, 도술이라는 게 참 힘이 드는 건데, 너희들이 웃어버리면 힘이 빠져서 못하거든. 그럼, 너희들이 보고 싶은 도술을 변신도술을 못 봐."

"안 웃으면 돼죠."

"좋아, 자신 있지?"

"네."


자신은 뭘. 이내 웃어버린다. 당연히 내가 도술을 못 부린 건 아이들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아이들은 내 도술 움직임과 자세에 이미 웃어버리고 난 어쩔 수 없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가끔 도술을 부릴 때,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너희들로 변신하겠다 하면 나중에 아이들은 도술을 믿던 안 믿던 다 자기로 변신해달라고 난리다. 오늘도 아이들 몇몇은 이랬다.


"선생님, 내일은 나로 변신하는 도술 부려주세요."

"그래? 음....그렇지 뭐. 내일 보자."


이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 아이들과 친구 이름을 아는 놀이를 좀 했다. 서로 개인 소개를 간단히 하고 이름도 확인시키고 난뒤에 공을 서로에게 던지며 자기 이름과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놀이. 처음에는 익숙하지도 않은데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자세가 흐뜨러지고 눈길을 다른 데로 한 없이 돌리던 차에 그것을 바로 잡고 다시 시작하자 조금씩 나아진다.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후로는 익숙해진 이름으로 서로의 이름을 다시 알아 맞히는 놀이를 했다.


가르막을 치고 양쪽으로 몸을 숙여 앉아 있던 아이들이 한 명씩 일어나 마주 본 친구의 이름을 먼저 외치면 이기는 놀이. 벌떡 일어나 서로를 보고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멍하니 골똘히 있을 때 표정들이란....하하하. 이 놀이는 이름을 잘 맞히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애매모호하고 멍해져 웃음을 유발하는 지점에 있다는 게 가장 큰 묘미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에게 나는 쉬는 시간을 주었다.


교실 뒤편에 있는 나무조각들을 주고 놀게 했는데, 자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모습들에서 진짜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쉬는 시간을 보낸 뒤, 난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곳곳을 다녔다. 위험한 곳, 가지 말아야 하는 곳, 각 건물에는 누가 살고 일하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공사가 여기저기 한창 중이라 위험한 곳, 가지 말아야 할 곳을 특히 강조해야 알려주어야 했다. 각 교실 방문과 인사는 정비가 되는 나중으로 미뤘는데, 오늘 돌봄교실로 가야 해서 그 교실은 따로 안내하고 유치원 교실까지 가서 인사를 하고 텃밭도 둘러보고 나왔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챙겨 급식실로 조금은 일찍 나섰다. 영양사 선생님과 조리사님 등을 뵙고 인사도 하고 배식하는 법과 퇴식하는 법을 익히려 했다. 그런데 마침 영양사선생님이 몸이 불편해 늦게 오셔 그 과정은 내일로 다시 미뤄야 했다. 내일은 6학년 아이들이 배식과 퇴식을 도울 예정이어서 아이들은 또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식사를 할 것 같았다. 오늘 내내 아침부터 김치를 못 먹는다며 안절부절했던 한 아이는 내가 부탁한 김치 한 조각을 겨우겨우 밥하고 미역국과 함께 먹어치웠다.


다행히 맞은 편에 앉아 있던 김치를 너무도 좋아한다는 아이 덕분에 용기도 낼 수 있었는데, 녀석의 하는 말이 참 귀엽고도 우스웠다.


"봐, 김치 잘 먹을 수 있는데."

"김치 맛이 안 났어요. 밥 하고 먹으니까."

"그래 앞으로도 꾸준히 먹어 봐."

"네, 하루에 한 개씩만 먹을 게요."

"그래,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잘 먹을 거야. 약속."

"선생님, 왜?"

"김치도 먹을만 하네요."

"하하. 그래. 다행이다. 하하하."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다만 아직 젓가락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대부분이어서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가정에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수저를 다루는 모습이 꽤나 익숙지 않았다. 앞으로 또 해결해야 할 지점이 보였다. 다시 산책길을 돌아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과 시간표를 나눠주고 엘자 파일에 '새싹 우체통'을 붙여주며 집에 가서 어른들 보여드리라 했다. 그리고는 아침에 가르쳐준 노래와 율동을 다시 확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순간순간 잔소리를 해야 할 상황이 많았고 엄하게 대하여야 할 일도 벌어지고 앞뒤 구분을 못하고 팔짝팔짝 뛰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지만, 그래서 몇몇 아이들은 앞으로 많은 시간을 나와 보내야겠다 싶었지만, 녀석들 중에는 내가 일하는 데 나와서 내 입에 붙은 종이조각을 떼주기도 하고 오늘 느낌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에는 오늘 너무 좋았다고 선생님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고 내일 또 학교 오고 싶다고 하는 아이도 있고 심지어 나 보고 잘생겼다고 해주어서 그나마 오늘 살짝 피곤해진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오늘 정말 재밌었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내일은 더 재밌을 거라 했다.  그래 내일도 재밌어야 할텐데...하하하. 애고 애고...1학년 첫날이 이렇게 힘들 줄....고작 12명인데...2주 한 달을 지나야 보이던 발톱을 이렇게 단 하루 만에 보여주다니....녀석들 정말 대단하다. 하하.


아냐, 혹시 이 녀석들...내가 너무 만만해 보인 건가? 음.... 만만하게 봤다면 뭐 다행이지. 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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