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Mar 06. 2024

선생님을 안아 줄 거예요

(2024.3.5)

교실로 들어서는데, 두 녀석이 앉아 있다. 그러고는 자기들이 일찍 왔다고 나 보고 왜 이렇게 늦냔다. 하여간 요 나이 때 아이들의 생각은 맹랑하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몰려 들어온다. 순간 귀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녀석들이 오늘은 또 어떤 일을 벌일지가 궁금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찻잔을 준비하게 했다. 오늘의 차는 '페퍼민트'. 차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꽤나 난이도가 높은 것.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 중 어제 한 어머니로부터 얻은 정보로 찾잔을 들여다 보며 멍하니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너 어제 전학가고 싶다고 했다며... 차 마시기 싫어서."

"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잉, 선생님이 도사인걸 까먹었군."


어제 학교가 재밌다며 그런데 차는 마시기 싫다던 아이. 그래서 전학을 고래해보겠다며 맹랑한 말을 했다는 녀석은 꽤나 시크하고 말장난으로 자기 존재를 부각시키곤 한다. 다행히도 오늘은 난이도 높은 페퍼민트를 모두 마시고는 꽤 괜찮다며 늦게 먹는 한 아이에게 조언을 건넸다.


"그냥 쑥 마셔.  맛있어. 괜찮아."


이렇게 녀석은 어제와 달라졌는데, 이 변화는 모든 아이의 변화로 이어졌다. 어제부터 친구들을 때린다고 전해진 아이의 문제도 그랬다. 알고 보면 때리는 게 아니라 툭툭 치는 거였고 일종의 아님 그 아이 나름의 장난이었는데, 아이들 표현은 '때린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표현 자체가 섬세하지 못한 아이들의 표현은 그것을 그대로 듣는 어른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사실 어제 때린다며 나에게 달려온 아이는 세 명이었다. 그래서 오늘 어제 문제를 다시 확인하고자 어제 맞았던 아이들, 손 좀 들어보라 했더니 한 명만 드는 게 아닌가. 이럴 줄, 내 이럴 줄 알았다.


하루만 지나도 다 잊어버릴 만큼 큰 일이 아니었고 수 많은 일들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제는 단순히 해프닝이었던 것. 그럼에도 서로가 불편을 느끼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다짐을 받고는 무사히(?) 오늘 하루를 넘겼다.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고 일주일이 다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싸우던 아이들이 10분도 지나지 않아 같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의 성향과 발달단계를 생각하지 못하면 자칫 다른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앞으로 보호자들과 이런 지점에 대해, 초등학교 생활에서 지켜봐 주고 무던히도 믿어주어야 하는 지점이 무언지를 조만간 전해야 할 듯했다.


한 잔씩 차를 마시고 오늘 들려준 옛이야기는 '정신없는 도깨비'. 하도 재밌어서 그림책까지 나올 정도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빠져드는 듯 했다. 어제도 느꼈지만, 이 아이들은 흠뻑 빠져드는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껏 만났던 아이들과 무언가 결이 다르다. 이 이야기에서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어제 모든 걸 보여주었던 아이들을 끌어들이려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쉽지 않았다. 조금은 긴 이야기와 되풀이 되는 상황에 적응하다가도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아이들이 꽤나 모였다. 그 아이들을 이끌어 가며 이 이야기에 다가가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처음 겪은 일이다. 나도 좋은 경험을 했다 생각했다.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중에는 사토 와키코의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의 빅북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내 보였다.


"와, 왜 이렇게 책이 커요?"

"너희들이 자세히 잘 보게 하려고 만든 책이지. 빅북이라고 그래. 영어로 빅이 뭔지 알아?"

"큰 거요."

"와 그런 것도 알아?"

"....음...작가는 사토 와키코라고 해.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나라 사람이 만든 걸까?"

"사토와 키코?"

"잉? 사토와 키코. 하하하"


아이들은 큰 그림에서 펼쳐지는 빨래하는 엄마의 활약과 엄마에게 빨래를 당한 도깨비와 그 이후 수많은 도깨비들의 강림으로 또다시 빨래에 도전하는 독특한 한 엄마에 푹 빠져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사이 사이 놀이도 했다. 둥굴게 앉아서 공을 던지며 어제 서서 익히던 이름알기 놀이도 하고 빈자리에 친구를 채우는 놀이도 했다. 특히 빈 자리에 친구를 채우는 놀이를 익히게 하는데 속이 다 터지는 줄 알았다. 하하하. 하도 답답해서 답답하고 했더니 한 녀석이 "선생님 답답하면 화를 내야지 왜 웃어요?" 한다. 한 이십번을 되풀이 하자 그제야 조금 익숙해지는 아이들. 중간놀이 시간이 되어 자유롭게 놀게 해주려 하는데, 아이들은 좀 더 하자고 난리였다. 그렇게 중간놀이 시간도 보내고 앉고 일어나며 바른 자세를 취하는 공부를 해 보았다. 여전히 의자에 바로 앉는 게 힘든 아이들에게 자세를 바르게 하기를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서는 자세를 익히고 교과서에도 나오는 바다 섬으로 놀이를 만들어 보았다. 섬이면 자리 뒤에 서 있다가 바라라고 하면 각 책상 옆으로 서 있는 것. 섬을 외치면 들어가고 바다를 외치면 나오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놀리려고 섬하다 섬하면 바다 쪽으로 움직이려 하면서 얼마나 우스운 모습을 연출하던지. 아이들은 이것도 또 하자고 난리였다. 겨우 다독이며 텃밭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서 비닐하우스의 역할도 말해주고 우리 밭을 다시 확인하며 무엇을 심을 지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 어제 약속했던 급식 배식 퇴식 안내를 해줄 6학년을 만났다. 서로가 어찌나 부끄러워 하던지.


1학년 손을 잡고 산책길로 나선 6학년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는데, 그럼에도 급식실에서 우리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음식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6학년 모습이 참으로 대견했다. 1학년 아이들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어제까지만 해도 첫날부터 말이 많던 아이들이 숨을 죽이며 밥을 먹는 모습이란. 하하하. 퇴식까지 도와주며 마무리 해준 6학년이 고맙기만 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아이들을 이를 닥고 잠시 쉰 다음 마지막 시간을 준비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오늘 왜 놀이터에 가지 않았냐고 항의를 한다. 내가 약속한 것을 나도 깜빡한 것.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창 공사중인 틈을 타 놀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찌나 잘 놀던지. 그네를 돌아가며 타게 하고 미끄럼틀에서 소리치며 놀게 하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 다시 교실로 돌아가자는 데도 거리낌없이 나서준 아이들을 데리고 나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인사로 오늘의 마침표를 찍었다. 어제 보다는 한층 안정이 된 아이들. 여러 곳에 손이 갈 곳이 많은 아이들. 이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 3월 한달이 매우 중요할 듯하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나았다. 그래서 참 좋았다. 오늘 한 남자 녀석이 중간놀이 시간에 나를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애고 애고 내가 녹아든다. 녹아들어. 하하하. 오늘은 여기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걸 단 하루만에 다 보여주다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