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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22. 2024

선생님이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2024.3.22.)

아침부터 바빴다. 깜빡하고 오늘 다모임이 있는 걸 잊고 아침 열기 수업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가기 전 그래도 할 건 다 했다. 삼일만에 차도 다시 마셨다. 향긋한 과일차를 대접했다. 역시나 이 향도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이 있었다. 어떻게 언제 바꿔 볼 수 있을라나. 1학년에게 차를 따라주기 어언 다섯 해째만에 처음 당하는 시련이라..쩝쩝...그리고 나서 오늘의 옛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이 고치기'. 나이를 고친다는 말에 아이들은 사뭇 궁금해 했다. 나이를 어떻게 고친다는 거지?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들은 '아하~'하는 모습이었다.


뒤늦게 낳은 아홉살만에 죽을 수 있다는 스님의 경고에 산신령 둘을 만나 데스노트에 적혀 있는 '아홉'이라는 글자 앞에 '아흔'을 올려 놓는다는 이야기. 아이들은 별 것 아닌 옛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다. 첫주에 옛이야기에 시큰둥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침마다 옛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보는 것만이 아닌 듣는 힘을 기르는 일은 요즘 시대 더욱 중요해졌는데....몇몇 오늘도 아이들은 주말에 유튜브 보고 게임할 생각에 들 떠 있었다. 어른과 환경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은 결코 기대한만큼의 성장을 이루기는 어렵다. 이 문제도 보호자들과 함께 이야기 할 소재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아침열기 시작을 보내고 서둘러 아이들과 나는 음악실로 갔다. 오늘은 2024학년도 거산초등학교 전체 다모임이 열리는 첫날이었다. 이미 자리하고 있는 자리에서 맨 앞에 앉은 1학년 새싹이들은 형님누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 소개를 간단히 했다. 분위기에 맞게 제 목소리를 내며 신나게 자기 소개를 대부분 잘 해주었다. 그리고는 전학년이 섞이는 모둠짜기 시간. 아이들 한 명마다 미션 종이가 쥐어지고 그것에 따라 모둠이 짜이고 만나고 인사를 하고 모둠이름과 함께 올 일 년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 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뭣도 모르는 1학년이지만, 그 자체로 우리 1학년 아이들 표정은 한껏 달아 올라 있었다. 앞으로 있을 각종 행사 때 전학년이 골고루 분산된 모둠에서 우리 아이들은 또 다른 걸 배우고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중간놀이를 충분히 즐긴 아이들은 1,2교시에 하려 했던 국어와 수학 공부를 1시간씩 나눠했다. 첫 시간은 한글쓰기 교재로 쓰는 방향에 따라 소리를 내며 한글쓰기 획순을 익힐 수 있는 기본 배움 시간이었다. 남한산초에서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교장이 된 이후로 교재로 만든 지금은 경기 양평서종초 교장이자 유명 동화작가인 김영주선생의 교재는 매우 유용하고 쓸모가 있다. 이번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을 하는데, 그런대로 괜찮은 반응이었다. 아쉬운 반응을 보인 아이도 있었지만,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을 수밖에. 오늘은 내림, 건넘, 건너꺽어내림, 내려꺽어건넘이라는 획순을 공부하고 썼다. 익숙해지길 바랄 뿐이다.


다음 수학시간에는 1에서 5까지의 수를 공부한 것으로 카드놀이를 했다. 템북에서 만든 수감각, 기초연산 카드로 놀이를 했는데, 오늘은 1에서 5까지의 숫자 카드와 점카드로 시작을 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카드를 위 아래로 놓고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아이가 각기 다른 카드를 뒤집어 같은 수를 확인하면 가져가는 놀이였다.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해 실물화상기로 직접 시연을 해가며 했다. 나중에는 어찌나 신나게 하던지. 이렇게 1~5까지의 수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점심시간. 오늘 어이가 없었던 것은 세 시간 마치고 화장실 다녀오라는 말에 두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밖으로 나가서는 점심시간 줄을 서더라는 것. 애고 애고....이 아이들을 어찌할꼬 싶었다. 하하하.


그렇게 점심시간 식사를 하려 내려 갔는데, 말썽꾸러기 한 녀석이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도 굳이 내 옆으로 와서 밥을 같이 먹으려 했다. 그래서 물었다. 왜 자꾸 오냐고 말이다. 그러니 하는 말이 재밌다.


"선생님 하고 데이트 하고 싶어서."

"하하. 샘 옆에 오면 숟가락 바로 잡으라고 그러고 김치 먹으라고 하고 잔소리하는데도?"

"네, 괜찮아요. 그런 건."


그때, 옆으로 어제 김치 사건으로 학교등교 거부를 했던 녀석이 약속을 지켰다며 김치를 딱 하나 가져와 그것도 한 입 먹었다며 내게 와서 자랑질을 하는 게 아닌가. 장하다 박수 쳐주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렇다. 아이들은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자란다. 어디 아이들 뿐인가. 어른도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부터 온 나라의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으로 실패의 경험도 꾸중과 혼나는 경험도 없이 화초처럼 키워지고 있다. 과연 이런 교육이 아이들에게 유익할까.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해보고 다시 일어서서 자기 스스로 해결도 해보는 경험이 진짜 배움이 아닐까. 몇 해 전 모 학교에 신규교사가 발령을 받아 학교에 오는데 그 젊은 교사 엄마가 따라와 잘 부탁한다고 교장실을 들어가는 통에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오래 우리 새싹이들은 우리 학교의 교훈처럼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어린이가 되는 기초를 탄탄히 쌓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이들과 만난 19일째 되는 날이다. 다음주면 3월도 이제 끝을 바라본다. 시간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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