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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09. 2024

갑작스런 진달래 소탕(?) 작전

(2024.4.9)

교실로 들어서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힘이 없던 준*가 오늘은 힘을 내 우유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고마워 책을 읽어주었다. 아파서 결석을 해 읽어주지 못했던 <이유가 있어요>였는데, 아이들이랑 이 읽을 때와는 다르게 큰 반응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나중에 수학수업 때 읽어준 그림책 <날아라 숫자 0>의 출판사를 묻자 대뜸 '봄나무'라는 출판사 이름을 댄다. 대충 보는 듯해도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었던 녀석이 대견했다. 오늘은 예*가 그렇게 기다리던 '한라봉차'를 먹는 날. 다 같이 먹으려 자꾸 늦췄는데, 오늘마저 늦출 수 없어 시도를 했다. 이건 차가 아니라, 따듯한 주스다. 다들 맛있다고들 난리다. 당연하지 엄청 단 한라봉차인데. 하하.


오늘 첫 시간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리고 다들 한라봉차에 취해 있을 무렵에 동화 <엄마 사용법>을 들려주었다. 마음이 생겼다는 이유로 불량품 취급을 받게 된 생명 장난감 엄마를 데리고 파란사냥꾼을 피해 도망치는 현수의 처지가 된 아이들. 위기일발, 그 순간에 나타난 불량 장난감 고릴라. 고릴라의 도움으로 지붕 위로 피신을 현주와 엄마.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마지막 장면을 또 다음으로 넘겼다. 아이들은 또 이런다며 왜 그러냐며 성을 낸다. 감기로 병원에 다녀오는 선*를 생각해서 좀 미루자 했더니 그나마 화를 푼다. 이제 다음 동화는 무엇이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옛이야기 들려주고 동화를 들려주는 덕분에 책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힘을 얻는다.


오늘 첫시간은 'ㅡ'와 'ㅣ'를 공부하는 시간. 이제는 익숙해진 학습활동에 아이들이 잘 적응해주고 있다. 때때로 딴죽을 부리는 아이가 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햇수로 5년을 1년 담임하다보니 아이들이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책, 공책, 필통, 색연필통, 크래용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 된다고 해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작년에 조금 하고 올해부터는 작정하고 시작했다. 그랬더니 상당수의 아이들이 책상에 올라간 물건들 배치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하면 고학년도 못하는 걸, 1학년 아이들이 해내는 걸 보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 수학시간에는 계획을 바꾸어 숫자 '0'을 공부했다. 조성실선생님의 놀이수학에서 가져 온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어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 오늘은 이야기를 좀 바꾸어서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가 동굴에 도토리 9개를 숨겨 놓았는데, 이따금 꿈을 꾸어서 깰 때마다(이 때 아이들 이름을 들먹이며 그 아이 때문에 어떤 사연이 있어 깼다고 너스레를 떤다) 배고파서 하나씩 먹었더니 도토리가 다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찌나 재밌어 하는지. 서로 자기 이름도 넣어달라고 해서 결국은 우리 아이 열 두명의 이름을 다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하느님이 쫄쫄 굶게 된 도토리를 가엾이 여겨 0이라고 쓴 수 머리에 도토리 모자를 예쁘게 씌워 주면 다시 9개의 도토리를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하여 그리게 했다. 그렇게 숫자 '0'을 익히고 관련 그림책도 보며 숫자 1~9까지의 수와 '0'을 배우는 과정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는 1~9까지의 수로 빙고놀이도 해 보았다.


그런데 놀랐던 건, 우리 반 아이들 절반 이상이 빙고놀이를 모르더라는. 그래서 일일이 예를 들어가며 차근차근 다시 설명해서 한줄로 세 개가 이어지는 수를 말했을 때 대각선이던 뭐든 빙고라고 소리치고 빙고 세 개를 완성한 사람이 제일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그러고 시작하니 조금 나았는데, 두 개만 잇고 빙고라고 외치는 아이도 있어 너무도 웃겼다. 그렇게 아이들은 빙고의 세계로 들어왔고 재미를 한껏 느꼈다. 정말 이 아이들은 새롭게 가르칠 게 참 많은 아이들이다. 하하.


오늘 마지막 시간은 또 시간표를 바꾸어 목요일 치러질 진달래 화전 준비를 위해 꽃에 대해 좀 살펴보고 먹을 수 있는 꽃과 그렇지 못한 꽃을 간단히 공부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뒷산에 올라가서 진달래가 있는 곳을 찾아가 목요일에 다시 찾을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 걸. 지난 주까지도 만개를 하지 않았던 진달래가 푹 져 버린 것인 아닌가. 마음이 급해졌다. 뒤늦게 핀 것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지다니. 마음이 급한 나는 급히 내려가 바구니를 가져와 아이들과 따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은 군락지라 아래로 내려가 텃밭을 지나 산 둘레길로 이어지는 진달래 군락지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은 아직 버티고 있었다. 다만 2학년과 나눌 양으로는 모든 진달래를 따야 해서 미안했지만, 그야말로 순식간에 진달래는 우리 1학년 때문에 사라져 버려야 했다. 그렇게 따서 교실로 돌아와 2학년 선생님이 받아서 서둘러 냉장고에 정리해 보관하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흘린 땀을 식히고 아이들을 돌려보내니 벌써 3시를 향해 시간은 달려가고 독서동아리 대표가 찾아와 세계 책의 날 행사를 같이 의논하고는 곧바로 보호자 상담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세 분을 만나고 이렇게 일기를 쓰니 밤 9시가 다 돼 간다. 에효, 오늘 하루도 이렇게 흘러간다. 그나저나 내일 선거 결과가 어찌 될 거나....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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