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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11. 2024

삼월삼짇날을 빛낸 건, 꽃이 아니었다

(2024.4.11)

어제 치러진 선거결과로 휴대폰 속 뉴스가 시끄럽다. 어찌됐든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의사가 확연히 드러난 투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부탁컨대, 우리 어린 아이들도 배울 수 있는 정치가 됐으면 한다. 어린이들도 배울 수 있는 정치를 하는 나라가 진정 잘 사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출근을 한 오늘은 삼월 삼짇날.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날 진달래를 비롯한 꽃으로 전을 해 먹으며 봄이 오는 절기를 즐겼다고 한다. 우리 반도 예전 그 시절처럼 진달래 꽃전 잔치를 열었다. 생태전환교육지원단(보호자) 세 분이 오시기로 2주 전부터 준비가 됐고 오늘 나는 아침부터 실과실에 가서 기본적인 준비를 해 놓았다.


실과실로 가서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왠일로 우리 반 녀석들이 책상 위에 찻잔을 알아서 가져와 앉고는 나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달 만에 비로소 루틴의 완성이 됐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마구마구 칭찬을 해주고는 <엄마 사용법> 동화 를 마지막으로 읽어주는 다음주에 하기로 했다. 오늘은 그보다 급한 진달래 꽃전잔치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 일제 강점기 시절의 작가 최병화의 동화 '진달래꽃 필 때'를 유기훈이 그린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집안 생계로 부산에서 서울로 멀리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나이 일곱남짓 아이의 가슴앓이가 담긴 이야기. 진달래가 주는 슬픈 기운이 있지만 봄을 빛내주는 식물이라는 걸 아이들과 조용히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지난 화요일 미리 따둔 진달래꽃을 관찰하고 기록장에 그림을 그려 보게 했다. 다섯장 잎에 꽃술이 담긴 진달래꽃을 그리며 참꽃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개꽃'이라 불리는 철쭉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몇 번은 더 가르치고 해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몸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다. 그 와중에 차를 한 잔씩 따라주었는데, 과자 냄새가 난다며 맛나게 마시는 아이들이 참 귀여웠다. 누군가 작두콩 차와 비슷한 맛이라 하여 동의를 해주었다. 사람의 기억 속에 미각으로 이어진 추억이 오래 남는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아침마다 차를 마시는 이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 순간들이 남아 있기를....


곧바로 생태지원단 분들이 오셔서 구름, 달래, 보리수라는 이름을 소개하며 세 분이 인사를 건네고는 4명씩 나뉜 모둠으로 봄꽃을 만나고 구하러 길을 나섰다. 신나게 뛰어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걱정도 하셨다는데, 다들 무사히 아름다운 봄꽃들을 만나고 교실로 들어왔다. 훙분된 아이들은 잠시 진정 시키고 생태지원단 분들은 실과실로 가셔 전을 부칠 준비를 하러 가셨다. 나는 앞치마와 앞접시, 포크 등을 준비한 아이들 챙겨 실과실로 갔다. 마침내 시작한 2024년 진달래꽃전잔치, 그것도 삼월삼짇날에 하는 꽃전잔치라니. 기후변화로 진달래꽃이 피는 시간이 너무 불규칙해진 탓에 절기에 맞춰 하기 힘들었는데, 올해는 또 다른 이상기후로 날을 맞춰 낼 수 있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 아이들은 삼월 삼짇날에 진달래 꽃전잔치를 할 수 있었다.


오신 분들은 대부분 이 근방 마을에 사시는 보호자 분들이고 꾸준히 오랫동안 생태활동에 참여하신 분들이어서 화전에는 거의 다들 고수였다. 아이들과 꽃을 씻고 반죽을 같이하고 기름을 적게 쓰며 꽃을 태우지 않게 굽는 것까지. 아이들은 한껏 고무된 상태로 집중하며 반죽도 하고 전 크기로 만든 익반죽 위에 꽃을 얹어 굽는 데까지 즐겁게 참여를 하였다. 마침내 맛을 보는데, 꿀덕에 어찌나 맛있어 하는지. 나중 점심시간에 마침 나온 또다른 화전에는 거의 입을 대지 않을 정도로 맛난게 맛을 보았다. 그러다 집으로 화전을 가져 가야겠다고 식구들을 챙기는 모습들이라니. 끝으로 소감을 이야기 하며 오늘의 행복을 각자의 기억 속에 담아두게 했다.


꽃전을 만들어 부치며 애기 같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말로 생태지원단 분들을 녹아들게 했던 우리 아이들이 알고보면 그 어떤 꽃보다 예뻤다. 이렇게 행복을 가득 챙겨가는 날들만 지속되길 바라며 모처럼 제 때 맞은 삼월 삼짇날을 떠나 보냈다. 아침 일찍 수고해주신 우리 생태지원단 구름님, 보리수님, 달래님의 아름다운 지원이 더욱 우리 아이들을 빛내주어던 건 두 말 할 필요없었다. 이렇게 이 글을 마무리 하려는데,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가려던 재*이가 나를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나도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 세상 아름다웠던 삼월 삼짇날, 오늘은 우리 아이들과 만난지 서른 아홉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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