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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15. 2024

봄비 세차게 내리던 날

(2024.4.15.)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더니 오늘 아침 새차게 내린다. 등교하는 아이들은 우산을 쓰고 오고 있었다. 먼저 와 있던 아이들 셋이 교실 밖을 보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학교 건물이 새롭게 세워지면서 만들어진 조금은 색다르고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이들을 맞이하고 반겨주는 풍경은 마냥 좋기만 했다.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지난 주말이야기를 해 보라 했더니 어찌나 수다를 떨던지. 빌린 캠핑카로 바다를 다녀온 아이, 아쿠라이움과 각종 동식물을 만나고 온 아이, 친척 집에 가서 놀다 온 아이, 각양각색의 주말 풍경들이 시끄럽게 우리 교실을 떠돌아 다녔다. 그 와중에 나는 구체적으로 자세히 말하지 않은 것을 물었고 아이들은 거침없이 답을 해주었다.


나중에 나는 아이들에게 따듯한 곡차를 대접하고 나는 한 아이가 늦게 오는 사이에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동화를 줄곧 읽어주었는데,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해준다니 아이들이 무척이나 반겨한다. '염소사또'라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염소소리를 흉내내게 했더니 정말 재미나게 한다. 귀엽기가 그지없다. 하여간 이 아이들은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 뒤늦게 한 아이가 들어오면서 모두 완전체가 되었고 마침내 나는 <엄마 사용법>이라는 동화 마지막 편을 읽어주었다. 결국 생명장난감 엄마를 진짜 엄마로 맞이 하게 된다는 해피앤딩 이야기에 아이들은 푹 빠져들었다. 각자 소감도 물었는데, 아직은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를 읽어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 한 아이에게 읽어볼 것을 제안했더니 기꺼이 가져가 읽어보겠다 한다. 그 아이에게 이 책은 너무도 슬픈 이야기였지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가방에 들려 보냈다. 계속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첫 수업 선 그리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성과 깃발, 소용돌이를 그려 보게 했다. 3월초의 당황은 저 멀리 가버리고 조금씩 안정이 돼 가는 손놀림과 분위기였다. 여전히 급한 아이들이 많지만, 정성을 다하려는 아이들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소용돌이를 하면서 오늘 수학시간에도 지난 주에 계속 확인하는 작업이 바로 방향이었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생각보다 이 아이들에게는 꽤나 헷갈리고 어려운 지점이었다. 자꾸 확인하고 연습을 하는 수밖에.


마지막 불록시간은 수학시간. 오늘은 수학나라 공책 놀이수학에서 서수의 개념을 다시 확인하고 수와 숫자의 크고 작은 지점을 다지는 활동을 했다. 이후로는 교과서 1단원을 확인하면서 복습을 했다. 수를 바르게 쓰고 오늘 익힌 서수에 대한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해 보았다. 크게 어려움 없이 아이들은 진지하고도 재미있게 참여해 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은근히 노래 부르는 걸, 율동을 하는 걸 좋아한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간단한 청소 뒤에 정리를 하는데, 나 또한 내 일을 정리하는 사이에 몇몇 아이들이 하나 둘 '잘잘잘 1,2,3' 노래를 부르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가 '한 꼬마 두 꼬마'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 또 그걸 따하고 즐긴다.


세차게 비 내린 날. 아이들과 오늘 난 알콩달콩 그저 늘 그런 날들처럼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평화다. 세상에 이런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요즘 먼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고 다치는 걸 보면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봄비가 세차게 내리는 우리 반 소식을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수원의 한 선생님이 동시 한 편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나는 '봄비'라는 오래된 시를.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이 시 한 편 같이 읽게 해야겠다 싶었는데, 깜빡했다. 오늘은 아쉬움에 이 시를 이곳에 올리는 것으로 일기는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봄비_ 김석전


비가 그쳤네

햇빛이 반짝어리네

세수한 산과 들이

수군거리오

"어허, 시원하구려."

"어허, 시워하구려."


중앙일보 1930년 3월 19일 / <엄마야 누나야>(보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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