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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16. 2024

슬픔 공부

(2024.4.16.)

어제 교무회의 때 교무샘이 들려준 이안 시인의 <4월 꽃말2>과 평론가 신영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가져 온 글이다.


사월꽃말2 _ 이안


미산나무를 심을 땐,

가지 하나를 잘라

갖고 있자


모든 슬픔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슬픔 하나는,

잘 말려서 갖고 있자

-------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타인의 슬픔이라 했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니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고 평생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줄여 옮김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은 슬픔에 대한 공부를 했다. 오늘 4.16인 것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시간표가 나가서 부득이 조정을 해야 했다. 어제 교무회의 때 오늘 1학년 아이들은 세월호 10년을 추모하는 뜻에서 노랑종이나비를 몸에 붙여 내일 다닐 예정인데, 그 많이 오려 전교생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부탁을 드렸다. 흔쾌히 들어주신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우리 반 아이들은 아침부터 어제 내가 그려 놓은 노랑종이를 각자 받아 가위로 오리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모양은 잘 나지 않지만, 우리 반 아이들이 오린 것이라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이를 모두 오린 뒤에는 전주영의 그림책 <노란 달이 뜰 거야>를 보여주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아버지와 그 옛날 나누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온 집안과 동네를 떠도는 노랑나비가 결국은 하늘의 노랑 보름달이 돼 자신의 집을 비추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4.16을 딱히 꺼내놓지 않았지만, 4월의 달력이 집에 걸린 것만으로도 대강은 짐작이 가는 그림책일 수밖에 없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과 힘겨움, 슬픔과 새로운 희망을 우리 1학년 어린이들에게 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명의 아이는 너무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고 한 아이는 감동이라는 말을 썼다.


1학년 이 아이들에게 슬픔과 이어진 감동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어제 저녁 화상으로 공부할 일이 있어 참여하다 한 선생님이 1학년 통합교과 두번째 주제인 '사람들'이라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불만과 문제를 꺼내면서 그럼에도 가르쳐야 하는 이 주제와 내일 4.16 지점에서 '슬픔'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난 우리 반 분위기가 워낙 밝고 명랑한 지라 이 아이들에게 '슬픔'이라는 주제가 어울리지도 않고 어려울 거라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도록 교육시키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우리 반 두 명의 아이가 드러내놓고 슬프다고 하는 게 아닌가. 1학년 아이들이 세월호 사건 이야기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슬픔을 느끼는 지점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다 서둘러 전교생에게 노랑나비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세 문장을 꺼내 칠판에 써주고 골라서 자신의 노랑나비에 쓰도록 했다. 울퉁불퉁, 제각각의 글씨로 어설픈게 담아 놓은 글이지만, 아이들 옷에 붙은 노랑나비는 정말 예뻤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각 교실을 돌며 노랑나비를 제작하게 된 뜻을 전하고 따라온 1학년 아이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다행히도 우리 학교 아이들은 각자의 바람을 담은 노랑나비를 붙여 점심시간 때도 붙여 밥을 먹고 공부시간에도 노랑나비를 달며 뛰어 놀아주었다. 수업을 다 마친 뒤 1학년 교실로 다시 날아 들어온 노랑 나비들.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지만, 노랑나비들이 게시판에 차 오르는 모습에 웬지 울컥하는 감정이 든다. 벌써 10년. 원인은 아직도 제대로 규명이 되지 않고 제대로 처벌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 여전히 사회안전망은 제대로 갖춰 있지 못하고 언제든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우리가 정말 깨닫고 알아야 하는 슬픔의 의미와 가치는 눈물을 흘리고 단지 감동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슬픔이 또 다른 이들의 슬픔과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있지 않을까. 슬픔에 대한 공부는 공감 이상의 그 무엇이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4.16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슬픔을 대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 나 또한 배우는 하루였다. 지금도 6학년 아이들이 노랑 나비를 들고 교실로 들어와 게시판에 붙여두고 나가고 있다. 저 아이들이 전쟁의 위협과 안전에 대한 불안을 껴 안고 살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이 좀 더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 보며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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