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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23. 2024

2학년 돼도 해요?

(2024.4.23.)

오늘은 세계 책의 날. 저작권의 날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책의 날이 앞선다. 그동안 우리 학교에는 거산독서한마당 말고는 딱히 독서행사가 없었다.  이벤트처럼 치러지는 행사로는 우리 아이들을 책으로 이끌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우리 학교에도 세계 책의 날 행사를 기점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어 왔다. 도서관이 없는 관계로 지난해부터는 간소하게 치렀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짝학년끼리 책을 읽어주고 받는 과정에서 거산만의 책의 날에 의미를 찾는 활동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학년인 나는 짝학년인 6학년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세계 책의 날 행사 때 책을 읽어주는 이에게 꽃을 전하는 문화를 이번에는 압화 책갈피로 대신했다.


선배들은 책을 읽어주면서 압화 책갈피를 선물로 주고 책을 읽어준 고마운 선배들에게 후배들은 희망과 행운의 네잎클로버 책갈피를 선물로 주도록 했다. 중간놀이시간을 빌어 진행한 행사에 수줍게 1학년 교실로 들어온 6학년들은 우리 교실에 있는 책을 아이들과 함께 고르며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잘재잘 떠들던 1학년 새싹이들이 어찌나 다소곳이 앉아 있던지. 6학년 아이들도 제법 근사하게 어린 1학년의 몸짓과 눈을 보며 책을 읽어주었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인데도 꽤나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보내며 꽤나 차분히 책과 시간을 보냈다.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 오늘 느낌을 나누는데, 다들 어찌나 진지하던지. 너무도 좋았단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것에 5년 차이가 나는 아이들은 서로에게 감사해 했다. 그렇게 끝나려 할 때, 우리 반 예*가 질문을 한다.


"선생님!"

"왜?"

"이렇게 하는 거 2학년 때도 해요?"

"왜 좋았어?"

"네, 너무 좋았어요. 또 언니랑 책 읽으니까 너무 좋아요. 다음에 또 했으면 좋겠어요."

"와, 예*가 엄청 맘에 들었나 보네. 당연하지 내년에도 할 거야."


이번 세계 책의 날 행사는 오늘 목요일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우리 학교 모든 아이들이 함께 읽고 수업을 했던 <목기린씨, 타세요!>로 퀴즈를 내며 책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준비했다. 1학년 아이들은 월요일부터 이 책을 읽어주어 함께 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내일까지 다 읽어줄 작정이다. 오늘도 중간에 끊었다고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늘 첫 수업은 닿소리 'ㄲ'을 익혔다. 늘 익숙한 패턴이고 점차 익숙해져 가는 모습인데, 한글 익히기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아이도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해서 도움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있는지도 살펴야 하는 시간이었다. 느릴 뿐, 시간이 필요할 뿐, 본인의 의지와 가정의 도움이 함께 작동이 되면 충분히 해결될 지점에 있다는 믿음은 있었다. 수학시간에는 어제 결석으로 참여 못한 예*를 위해 여러가지 모양을 공부하기 위한 가베를 제공하여 재미난 모양을 만들어 보게 했다. 이후로는 서울서 수학공부를 하며 한 선생님이 특허 출원 획득을 한 수학 교구로 수업을 진행해 보았다.


기존 교구와 다른 것은 뒤로 구슬을 보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처음 활동은 짝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구슬씩 앞으로 돌려 10개를 먼저 채우는 놀이였다. 어찌나 재미있게 하던지. 다음 놀이는 아이들이 한 팀이 되고 선생인 나와 대결하는 놀이로 바꾸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크기 비교를 하게 했다. 교육과정에도 있는 대로 "선생님은 나보다 몇 개 더 많습니다(적습니다)"를 이야기 하게 해서 한 명 한 명 가위바위보를 한 뒤에 말을 하게 하여 연습을 시켰다. 다행히도 모든 아이들이 기대했던 목표에 도달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통합교과 '사람들'의 오늘의 주제인 '고민을 나눠요'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하는 말.


"선생님, 저는 고민이 없는데요?"


심각한 것만이 고민이라는 생각을 바꾸며 사소한 고민들의 예를 들어주었더니, 그제야 비로소 동생때문에 힘들다, 형, 언니 때문에 힘들다를 시작으로 도마뱀을 키우고 싶은 고민과 도마뱀을 키우고 있는데, 요즘 밥을 먹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하는 것까지 다양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모두 고민을 다 가지고 산다는 것을 이야기 했는데, 한 녀석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왜?"

"선생님은 무슨 고민이 있어요?"

"음...선생님은....요즘....얼마 있으면 이제 선생님을 그만 해야 하는데, 그 다음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이에요."

"잉? 그냥 선생님 계속 하면 안 돼요?, 그냥 하면 되잖아요."

"아, 선생님은 정해진 때까지만 선생님을 할 수 있거든."

"그냥, 선생님 저랑 2학년에도 하고 6학년까지 하면 안 돼요?"


이런 말을 꺼낸 뒤로 아이들은 대학생까지 해달라, 고등학생까지 해달라며 말장난을 섞어가며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세상 어떤 이들이 이렇게 순수하게 나이 잔뜩 들고 못생긴 이 배불뚝이 늙은이를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고 좋아해 줄까 싶다. 만날 잔소리에 혼을 내는 데도 이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좋아해 준다. 내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이런 아이들과 함께 지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순간 우울감이 불쑥 들어오기도 했다.


오늘은 아이들 말 때문에 이래저래 마음이 심쿵했던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려는데 우리반 재*이가 고발할 것이 있다는 듯, 내게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선생님, 00이가 가방 속에 000(곤충이름이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음 ㅎ) 넣어 가져 가려 해요."


에효, 이렇게 1학년 새싹이들과 만난지 51일째 되는 날도 그렇게 또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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