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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07. 2024

매번 겪는 경험에는 어김이 없다

(2024.5.7.)

나름 긴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는 길.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잔뜩 들고 올지 기대를 품고 학교로 갔다. 추척 추적 사흘째 내리는 비는 멈출 줄을 모른다. 겨울부터 봄까지 참으로 많은 비가 자주 내린다. 기후가 정말 괜찮은 건지. 비오는 날을 좋아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왠지 걱정이 앞선다. 교실로 들어갔는데, 역시나 먼저 앉아 기다리는 준*. 준*에게 책 하나를 건네고 오늘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속속 교실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모습이 한결 같고 아이들마다 자기 개성을 드러낸다. 환하게 웃고 들어오는 아이, 목소리 높여 인사하는 아이, 나는 보는 둥 마는 둥 자기 할 말만 하며 들어오는 아이,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뛰어 가는 아이. 이 아이들을 붙잡고 차 한 잔 대접하며 옛이야기를 한 편 들려주었다.


오늘의 차는 일본 여행을 다녀온 한 어머님이 보내주신 검정콩차. 구수하고 고소한 차에 아이들의 정겨운 목소리가 섞이면서 지난 연휴를 되돌아 보았다. 그렇게 시작한 첫 시간은 선그림. 지난 주 '겨울별 이야기'라는 선 그림 시간에서 겨울별로 내려간 요정이 굵고 가는 곧은 선을 그렸다면 오늘은 하늘의 무지개를 연상하며 둥근 선 한 쪽을 그리도록 했다. 사각 크래용으로 테두리 선을 그리고 굵고 둥근 선으로 반쪽 무지개를 만들어 나갔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도화지에 둥근 선 그림을 여러 번 연습하게 한 뒤에 했는데, 그나마 괜찮게 해 나가기 시작했다. 매번 틀렸냐 잘했냐를 묻는 아이들 목소리가 마치 잔소리처럼 느껴졌는데, 아마 내 말도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들렸으리라. 오늘은 둘째 시간에 연극시간도 있어서 짧게 끝내야 했다.


연극시간이 되자 비로소 몇몇 아이들 눈빛과 몸짓에 조금 다른 결들이 보였다. 특히 평소에 집중도가 낮거나 장난을 자주 치는 아이들이 좀 더 그런 모습이 보였다. 담임과 다른 선생님을 대하는 모습, 일반 수업이 아닌 모습, 책상에서 벗어나면서 평소와 다른 모습들을 보이는 몇몇 아이들. 경험상 이건 리듬이 깨진 거라는 느낌이 팍 들었다. 해마다 1학년을 맡게 되면 주말에 많이 놀러다녀왔거나 늦잠을 잔 아이들과 긴 연휴에 그동안 이어져 온 학교생활의 리듬이 깨지면서 교실에서 집중력을 잃고 예전 불편해 보이는 모습들이 자꾸 드러나곤 하는데, 오늘이 바로 딱 그랬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 3-4교시 수학시간에는 그런 현상이 더더욱 두드러졌다. 이때는 평소에 잘 하는 아이까지도 집중력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 보였다. 어김없이 리듬이 깨져 온 아이들.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다니는 1학년 아이들 같아도 나름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루틴과 패턴에 익숙해지면서 집중력도 살아나고 교사의 안내와 지도, 주의에 잘 반응하며 하루를 무난히 넘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중간에 가정의 교외체험학습이나 학기 초 주말과 긴 연휴가 이어지면 어김없이 깨져 한동안 학급생활과 수업생활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수학 시간 내내 내가 말한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교구를 계속 만지작 거리며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가 절 반 가까이 되었다. 다행히 온채움교사가 옆에 있어 도움을 주어 바로 잡고 갈 수가 있었는데, 덕분에 쉽지 않은 날이 되었다. 보호자들과 이런 지점도 다모임 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듯하다.


주말에 일찍 재우는 것, 긴 연휴 때 학교의 리듬을 잃지 않고 잊지 않도록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 가정에서도 일정한 루틴은 가급적 깨뜨리지 않고 가는 것. 이게 곧 아이들을 돕는 길이고 가정교육의 출발 지점인데, 이걸 지키는 가정이 물론 그리 많지는 않다. 꽤나 학교생활을 잘 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정에서도 이런 크고 작은 루틴과 패턴을 일정하게 때로는 엄격하게 유지하는 가정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인성은 절반이 유전이고 나머지 절반이 후천성이라고 하는데, 이런 지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게다. 오늘 마지막 시간은 내일 어버이날을 맞는 작은 카네이션 선물 바구니를 만드는 활동으로 보냈다. 아직은 손으로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아이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닌데도 쉽게 싫증을 내고 집중력을 잃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래도 많이 도와주지는 않았다. 아이들 작품이 내 작품이 되어서는 안 되니. 그리고 조금 모자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하고 스스로 한 작품에 본인이 책임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매번 어른이 도와주고 주위 친구에 의지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수학시간은 가르기 시간. 3. 덧셈과 뺄셈 단원의 가장 기초가 되는 시간. 두 수를 가르고 모으는데서 덧셈과 뺄셈의 원리를 아이들은 익히기 된다. 이미 아이들은 수셈판을 통해 가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익혔다. 교구를 만지며 감각은 익혔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추상화시키는 작업까지는 아직 멀어 보였다. 오늘도 몸으로 가르기를 익히기 위해 훌라후프에 모둠끼리 일정한 수를 갈라 모이는 놀이도 했는데, 이것을 수셈판과 수세기 칩을 사용하여 가는 것까지는 무리가 거의 없었다. 문제는 이걸 추성화 시켰을 때의 문제였는데,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자기 손가락과 수셈판에서 보이던 가르기 모습을 머리로 그림을 그려 나타낼 줄 알고 마침내 추상화 시킨 숫자로 가르기를 해 내기 위해서는 좀 더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앞으로 2주 내내 이 과정을 반복할 텐데,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해 보았다.  


오늘은 월요 증후군에 긴 연휴에 따른 깨진 리듬까지 이어가며 하루를 보내야 해서 아이들만큼이나 나도 꽤 힘들었다. 잔소리를 안 하고 싶은데도 어쩔 수가 없는 날이 오늘 같은 날이다. 내일은 좀 달라지려나....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내일 어버이날은 날도 맑아진다고 히나... 힘들었던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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