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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14. 2024

고마움을 안다는 것

(2024.5.14.)

도사 박진환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시은이에요. 1학년 때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가 끼룩끼룩하면 새우깡을 주셨는데 재미있었고 맛있었어요.

요즘도 잘난 척 많이 하세요? 잘난 척 아니고 원래 잘랐다고 말하겠지만, 1학년 때 도술 웃긴 것만 보여줬는데, 지금 1학년한테는 멋있는 거 보여주는 거 아니죠? 멋진 도술 보여줄 거면 저도 불러 주세요.

1학년들이 박진환선생님 잘 생겼다고 하던데 좋으시겠어요. 지금 1학년들이 우리보다 더 좋다고 해도 저랑 친구들 잊지 마세요.

박진환 선생님, 올해 1학년 가르치는 것도 화이팅~


2024년 5월 13일

(0시0)


준*에게 우리 학교 담임이 아닌 분들에게도 드릴 카네이션 브로치를 만들게 하는 걸 가르치던 도중, 아침 일찍 2학년 교실로 늘 들어서는 세 아이가 내게 편지를 건넨다. 그중 시*이가 건넨 편지가 눈에 띈다. 지난해 일기를 가르쳤을 때도 유독 눈에 띄는 글을 자주 써와서 칭찬을 엄청 해주었던 아이였다.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건넨 편지 속에는 시*이에게 비친 내 모습이 있다.


To. 박진환 선생님


선생님을 만난 건 저의 큰 복이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재미있었을 때도 있꼬 비록 무서우실 때도 있었지만, 다 저희를 잘 가르치시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거라고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졸업생 0태0 올림


이보다 앞서 교실에 들어섰을 때, 꽃병과 함께 붙여 있던 작은 편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재작년 12월에 졸업한 태*이의 글에도 그 아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며 동분서주 어머님과 뛰어다니던 아이. 이제 중2가 되었지만, 이렇게 어머님을 통해 나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이번 1학년 어머님들은 아이들 노랑 학급티를 입혀 보내며 아이들 옷 앞면에는 바구니에 카네이션과 아이가 담긴 커다란 스티커를 붙여 축하 선물로 보내주셨다. 거기에는 '선생님 사슴이에요? 항상 제 마음을 녹용,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넣어서 말이다. 정작 아이들은 이걸 왜 붙였는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각자 편지도 아이들 편에, 혹은 모아서 상자에 넣어 주셨는데, 그 가운데 하*이의 편지가 눈에 띄었다.


"사랑하는 박진환선생님께, 선생님 아침마다 재미난 책을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차를 주셔서 처음에는 쓰고 맛이 없었는데, 지금은 맛시서요."


이런 편지를 받아 읽는 중 아이들에게는 준*에게 맡긴 카네이션 브로치에 색칠하게 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왜 하는 지도 알려주었다.


"우리 학교에는 선생님 말고도 여러분이 잘 공부하고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분이 누가 있을까?"

"교장선생님이요."

"음, 교장선생님도 계시지만, 여러분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을 하시는 분이 꽤 있어요. 예를 들면....급식실에...."

"영양사선생님이요."

"맞아요. 그리고 조리사님과 두 분이 또 도와주셔요. 이분들 모두가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세요."

"또 누가 있을까?"

"청소해주시는 할머니."

"맞아, 할머니만 계신가?"

"텃밭 할아버지."

"맞아요. 그거 말고도 행정실과 교무실에도 여러분을 돕는 분들이 계셔요. 그 분들에게 다 인사하고 여러분이 만든 브로치를 선물해 드리는 것으로 오늘 아침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렇게 학교 한 바퀴를 돌면서 우리 학교에 자신들을 돕는 분들이 누구인지를 계속 확인시켜 나갔다. 개정된 2022 초등통합교과 교육과정의 두 번째 꼭지 제목은 '사람들'이다. 오늘 우리 아이들은 학교 사람들에게 대한 공부를 충분히 잘 한 것 같았다. 오늘 우리 반 어머님 중 몇 분은 이런 메시지를 보내셨다.


"모든 선생님들, 급식실 선생님들, 할머니 할아버니 샘들 모두에게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다 감사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학교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 전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렇다. 이런 마음이 아이들을 올곧게 키운다. 자기 자식만 생각하지 않는....진정 자녀를 위한 교육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보호자들은 시선과 관점 자체가 다르다. 물론 그런 부모 곁에서 자란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아침 일찍 문자로 지난 일 년을 함께 보낸 한 어머님이 감사의 인사를 보내었더랬다.


한번씩 오며가며 아이를 볼 때...문득 떠올려집니다^^

정작 변화되고 있었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저였다는 것을 알기도 했지요.

다시 1학년으로 되돌아간 날... 낯선 교실에 내리 쬐었던 햇살도 떠올려보고요.^^

그냥 인연도 특별한데, 말이에요.

훗날 아이를 보면 선생님이 오버랩이 되어 보이기도 하겠지요.

저희 곁에 오~래 스며들어 계셔 주셔요~

좋은 느낌은 계~속 갖고 싶거든요~^^

@->-->>----


고마움을 알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나 또한 그렇다. 가르치면서 나 또한 배운다. 아이들과 헤어지려는 참에 우리반 예*가 수줍게 한 마디 건넨다.


"선생님과 내일도 같이 있고 싶어요."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오늘은 아이들을 만난 지 71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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