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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y 31. 2024

아이들 때문에 웃었던 5월의 마지막 날

(2024.5.31.)

딱 석 달이 됐다. 여름 방학을 빼면 이제 아이들과 지낼 날이 여섯 달 남았다. 1/3이 지난 셈이다. 지난 석 달을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이해가 가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결국 이해가 갔고 뭔가 다른 듯했지만,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완전히 적응을 했다. 그래서 더 까불기도 하고 그래서 더 뛰기도 하고 그래서 더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학교라는 곳이 자기를 옥죄는 곳이 아니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것이 학습으로 이어지는 데는 시간이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우선 우리 학교가 학습을 강요하는 학교가 아니라 자발성과 배움에 대한 가치를 끌어내는데 목적이 있기에 기다려 주는데 익숙하다. 다만 기다려주기만 하면 잘못하면 책임 방기가 생기게 된다. 기다려주되 계획적이고 전문적이며 책임성 있는 피드백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기 때문이다. 학교도 방심하지 말아야 하고 가정에서도 이점을 유의 깊게 관찰하고 있어야 한다. 자칫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그르칠 수 있다. 그래서 교육은 어렵다.


오늘 아침 차 한 잔으로 시작한 하루. '빨간 부채, 파란 부채' 이야기로 재미나게 시작을 했다. 그런데 나하고 아이들하고 둘 다 까먹은 게 있다. 오늘 책 읽어주기로 한 것 말이다. 나도 무뎌 간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6월부터는 더. 이제 곧 100일이 않은가. 첫 시간은  'ㅂ'으로 공책에 낱말과 그림을 그리는 시간. 그리고 첫배움책을 마무리 하는 데까지 빠르게 이어졌다. 전반적으로 아이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게 가능한 건 아이들이 이런 패턴의 학습에 익숙해진 게 우선이겠지만, 가장 늦게 한글을 익혀가는 녀석의 학습상태가 꽤 좋아졌기 때문이다. 같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건 이런 장점이 있다.


둘째 시간은 딱지치기로 시간을 보냈다. 백창우 곡, 강원식이라는 오래 전 어릴 적 쓴 아이의 시, 거기에 굴렁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 '딱지 따먹기'노래도 배우고 딱지 만들기를 해 보았다. 우선은 교과서 담긴 딱지 자료를 써서 해 보았다. 재미나게 만들고 서로 도와가며 하는 모습에 예뻤다. 그렇게 해서 만든 딱지. 그것으로 딱지치기를 해보려 했는데, 꽤 많은 아이들이 할 줄 몰랐다. 유치원 때 해 봤다는 아이들조차 할 줄을 몰라 가르쳐 주었더니 신나게 남은 시간을 보낸다. 중간놀이 시간 때는 비석치기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지난 번 구입하여 준비해 놓고 하지 못한 저면관수 식물을 심는 시간으로 보냈다. 사실 오늘은 해양생물이 다양성과 해양환경 보호'에 관한 특강을 듣고자 했으나 70분이나 되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좀 긴 시간이고 두 시간이나 빼야 하는 것이라 1학년은 사정상 빠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식물심기로 들어갔다. 강낭콩과 해바라기 씨앗으로 나눠 심었는데, 아이들이 원하는 씨앗으로 심었다 저면관수로 키우는 방법을 설명 듣고 흙을 옮기는 것, 물을 주어 씨앗심기 구멍내기 씨앗심기까지 차근차근 하게 해 보았다. 나중에 이름을 붙이고 오늘 심은 날짜와 심은 씨앗이름을 붙였는데, 몇몇 아이들이 별명도 붙이고 싶어해서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재미난 이름이 많았다. 예쁘고 심어 가꾸고 싶다는 아이들 말이 참 예뻤다.


끝 시간에 수학을 하며 교과서를 잠시 다룬 뒤, 오늘 하루 일정을 마쳤다. 점심을 먹는데, 오늘은 자리가 없어서 그런지 진*가 내 앞에 오지 못했다. 이번 주 내내 내 앞에서 밥을 먹었던 진*에게 어제 왜 내 앞에서 밥을 먹으려 하냐 물었더니 너무도 재밌었다.


"음...음....여자 아이들만 선생님 손 잡고 선생님 하고 밥 먹어서 부러웠어요."


그랬냐며 웃으며 잘했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내 손을 잡고 싶다 해서 잡아주었다. 얼마나 부러웠으면. 담주 월요일 학교를 빠진다고 해서 아쉽지만, 진*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재*이가 내게 묻는다.


"선생님!"

"응? 왜?"

"강가로 나가면 안 되죠?"

"그게 무슨 말이야?"

"강가로 나가면 안 되잖아요."

"학교 밖에 있는 냇가 말이야?"

"네. 냇가."

"당연히 안 되지. 학교 밖에는 절대로 선생님 허락 없이 나가면 안 돼."


그러자 옆에 있던 다*이가 거든다.


"당연하지. 학교 밖에 나가면 안 돼."


그러고 묻는다. 다*이가.


"선생님, 그런데 왜 학교 밖에 나가면 안 돼요?"

"아니, 밖에는 차도 많고 사고도 날 수 있고 너희들끼리 가면 위험하지."

"아..."


이 녀석들이 이제는 학교 안도 답답했는지, 은근히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학교라는 어떤 곳인지 모르는 철 모르는 아기들 같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우습다. 100일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아이들과 이렇게 5월 마지막 날을 보낸 오늘은 우리가 만난지 86번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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