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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n 04. 2024

맘은 콩밭이 아니라, 텃밭에

(2024.06.04.)

입학 뒤, 100일이 다 돼 가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늘 마음은 콩밭 아니 텃밭에 가 있다. 1-2교시가 끝나고 중간놀이시간만 기다리며 열심히(?) 수업에 매진한다. 바르지 못한 행동이나 버릇이 나오면 중간놀이 시간에 나가지 못하고 나하고 상담을 하거나 잠시 교실에 머물러 있어야 하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심하려 애를 쓴다. 그렇게 해서 나간 우리 반 아이들이 보인 모습을 땅을 파는 것. 4월부터 시작한 바깥 놀이에서 모종삽과 괭이를 들고 아이들은 땅속 생물을 찾아내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 본 많은 선생님들이 1학년이 중간놀이시간만 되면 땅을 파고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렇다 보니 학교 주변이 땅이 파이고 이리저리 모종삽이 나뒹굴어 나중엔 모다 못한 학교 주무관님이 땅 파는 일을 그만 하게 해달라고 요구를 해서 그만 두게 하기도 했다.


지금은 땅 파는 일보다는 텃밭주변 개울에서 발견하는 개구리와 도마뱀에 모든 시선이 쏠려 있고 곤충을 채집하겠다고 집에서 들고 온 채집도구를 들고 텃밭 주변과 뒷산 일부를 누비고 있다. 누가 개미를 잡아죽였네, 무엇을 채집해서 집에 가서 풀어주겠네, 거미를 밟았다느니, 뱀을 봤다느니, 그야말로 우리 아이들은 학교가 줄 수 있는 혜택을 다 보고 자라고 있다. 교육과정에 생태전환프로그램이 있다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누비며 맘대로 관찰하고 스스로 놀이할 거리를 찾아내는 자발성에는 당해낼 장사는 없을 듯. 사정이 이러한데, 오늘 중간놀이시간은 4,6학년 독도탑방 뒤 부스를 마련해 간접 체험을 해주는 시간이 마련 돼 있어 일단 그곳으로 보내 체험을 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중간놀이 시간이 다 지나갔고 아이들은 내게 통 사정을 했다. 그래서 20분 정도 시간을 더 주어 실컷 즐기도록 했다.


오늘 1교시에는 수학교과서로 덧셈 과정을 확인하고 2교시에는 연극시간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늦은 3교시부터 4교시까지는 'ㅃ'으로 시간을 보냈다. 첫배움책과 닿소리 공책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 번처럼 'ㅂ'이나 'ㅃ'이 들어간 그림책을 찾아오게 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듯 금세 책을 찾아오기 시작한 아이들. 가져올 때는 신기하게 보고 재미나게 나랑 확인하면서 'ㅂ, ㅃ'을 마무리 했는데,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이다. 아침에도 유은실의 <나도 편식할래요> 책을 재밌게 읽었음에도 딱 거기까지이다. 아직은 스스로 책에 가려 하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 마음은 콩밭 아니, 텃밭에 늘 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누가 '아이들은 놀려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지 않았나. 충분히 즐기고 읽고 쓰는 일은 내가 도와주면 된다. 녀석들이 올 일 년 충분히 놀고 즐기길 바랄 뿐이다. 아니 6년 내내 이 곳 거산에서 놀며 생각하는 아이로 성장해주길 바랄 뿐이다.


햇볕 쨍쨍한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93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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